세계사 및 역사이야기

세계사이야기 |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탄생 배경(러시아 혁명)

곰고로곰 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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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E147

 

 

혁명 발발 직전 러시아의 시대 상황

혁명이 발발하기까지는 러시아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과 제정 러시아의 신분구조에 있었다. 또한 근대화라는 위기는 전제 체제의 붕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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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토지는 1만 명 미만의 귀족 가문이 전 토지의 9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근대화에 있어서 뒤쳐져 있다고 할 수 있었으며, 1861년에 이르러 비로소 농노해방이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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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890년대부터 정부는 러시아 경제를 근대화함으로써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서유럽의 주요 열강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1913년이 되자 러시아는 세계 제5위의 공업 대국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외부로부터 일본, 오토만제국과 독일 등의 도전을 받고 있었으며, 내부적으로 근대화는 뒤떨어지고 가난에 찌들어 있어 사회적 긴장감이 언제나 존재했다. 1860년과 1914년 사이에 러시아 제국의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되면서 토지자원에 심한 압박을 주었고, 러시아의 농업체계는 전반적으로 여전히 뒤떨어져 있었고 농민은 심하게 소외되어 있었으며, 제정 러시아를 향한 반정부 세력의 테러리즘 또한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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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와중에 도시에서는 전통적 사회신분 체계가 무너지고 있었고 인텔리겐치야로 알려진 정치적인 면에서 자유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집단이 등장 한다. 그들은 70년 동안 전제 체제의 정당성을 허무는데 많은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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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은 다른 종류의 도전을 제기하게 되는데, 그들 노동자의 삶은 생활조건이 비참하고 힘든 노동에 비해 임금이 너무나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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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정부만이 아니라 특권 사회 전체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러시아 내에서 사회민주당, 사회혁명당, 입헌민주당이 결성되는 등 정치구조 변화의 징조를 보이게 된다.

 

또한 러시아는 내무부대신 플레베(V.K.Plehve)의 강압통치와 경찰사회주의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더욱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게 했고, 러일전쟁에서의 패배는 황실의 위신을 떨어뜨렸고, 반체제적 혁명운동을 더욱 더 연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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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에 1905년에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러시아 1차 혁명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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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폰 신부의 지휘아래 겨울 궁전 앞으로 교회의 깃발과 차르의 초상, 청원서 등을 들고 14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모였으나,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블라디미르 대공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리고 천 여 명 이상이 피살되고 5천여명이상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2차 발포에서는 시위자가 아닌 학생이나 구경꾼에게 발포하여 마침내 민중의 큰 동요를 가져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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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사태에 대한 항의와 함께 사회는 무질서 상태가 되었다. 또한 수병들의 반란도 있었다. 이 사건은 선량하고 자비로운 아버지 차르의 믿음을 완전히 깨버리는 계기가 되었다니콜라이 2는 상황수습을 위해 10월 선언을 통해 정부에서는 의회인 두마를 구성하게 되었고 비로소 절대군주제 시대의 종말이 예고된다.

 

이후 러시아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파업이 증가했고, 1905~6, 1912~14년에 연간 파업자 수가 공장 노동자 총수의 거의 3/4에 달했다. 1914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 군대는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이러한 와중에 니콜라이 2가 직접 전쟁을 지휘하게 되고, 이 때문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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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계속되자 러시아 경제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14년 말에 이르러 폭약이 떨어진 부대가 증가하였고, 철도수송 체계파괴, 설비재와 기계 등의 부족, 전시 체제로 전환함으로서 내수시장이 파괴되고, 농산물 공급에 큰 차질이 생겼다. 또한 황후라스푸틴이 관료들의 인사에 개입하고 나쁜 소문이 도는 등 황실황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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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겨울 의회의 급진주의자들 뿐 아니라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도 정부의 전쟁정책을 비난했다. 1917년에 접어들면서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은 점점 늘어났고, 19171, 2월 사이에 천 건이 넘는 파업이 발생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생존에 필요한 최저의 식품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회상은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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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의 진행

러시아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들은 마침내 1917년의 2월 혁명으로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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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과 좌절 속에 있던 러시아의 주부들과 낮은 급료에 시달리던 병사들의 부인, 방직 공장의 여공들은 빵가게를 습격하고, 기름부족으로 푸틸로프 제철소가 문을 닫게 되자 직장을 잃은 수십만의 군중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여성들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더욱 확대 되었다. 시위 대열은 전쟁 종식차르 정부 타도라고 씌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즈나멘스키의 광장에서 드디어 발포명령과 함께 시위대에 대한 발포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이튿날 아침, 볼린스키 연대가 항명했고, 다른 부대들도 재빨리 같은 행동에 뒤다라 나섰다. 이렇게 확대된 봉기대열은 감옥과 경찰서를 공격하고 관리를 체포하고 제정의 노예 상징을 부수고 있었다. 이렇게 2월 혁명으로 노동자와 병사들의 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병사대 의원 소비에트(Soviet)가 탄생하게 되며, 니콜라이 2제의 퇴위로 러시아의 전제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혁명이 있은 이후, 임시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케렌스키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와 소비에트간의 이중권력이 태어났다. 이러한 이중권력은 페트로그라드 밖에서는 정부가 군 이하 행정 단위에서 공권력을 관철할 능력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명확했다.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 이어갔고 러시아군의 6월 공세는 4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낳았다. 또한 병사위원회는 사회주의 혁명가당좌파볼셰비키 같이 전쟁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군대의 규율은 한없이 약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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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마침내 레닌이 귀국하고 4월 테제를 발표한다. 그는 자본가와 지주의 정부를 지지해서는 안 되며 권력이 소비에트로 넘어가도록 만드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했으며, 이제 혁명이 부르주아 단계에서 사회주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볼셰비키는 이러한 자기당의 정책을 지칠 줄 모르고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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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1만 명이던 당원이 10월에는 40만 명으로 늘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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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7월 사태 등의 사건이 발생하고 케렌스키는 볼셰비키에게 독일의 간첩이라고 낙인을 찍고는 가혹한 보복명령을 했고, 이어 볼셰비키당은 와해될 위기에 놓였다.

 

7월 사태 이후 케렌스키는 총리가 되었고, 군대의 해체를 저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코르닐로프 장군을 최고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케렌스키와 코르닐로프는 볼셰비키를 억누른다는 숨은 뜻을 지닌 굳센 정부를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데 합의했고 상대방을 이용해 자기의 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를 바랐다. 그러나 케렌스키는 코르닐로프의 음모가능성을 직감하고 그를 직위 해제한다는 전신을 보냈다. 하지만 코르닐로프는 그 전신을 무시하고 페트로그라드로 진격했다. 당시 수도를 막일 수 있는 부대는 소비에트뿐이었고 케렌스키는 치욕적으로 소비에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코르닐로프의 반란은 진압되었고,반혁명이 가하는 위험을 극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케렌스키 정권의 취약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이는 볼셰비키가 7월 사태 이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에 , 평화, 토지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자본가와 지주의 정부에 반대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거부,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겠다는 볼셰비키는 수많은 노동자와 병사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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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레닌은 봉기를 준비하고 1024일 케렌스키의 인쇄소 폐쇄명령에 이어 봉기가 시작되었고 혁명군은 거의 무혈로 수도의 주요 거점인 겨울궁전을 제외한 도시 전체를 점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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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소비에트대회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일부가 퇴장한 가운데 봉기를 승인하고 권력 장악을 결의하였고, 내각인 인민위원회를 수립하였다. 레닌은 그의 수상격인 인민위원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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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그것을 굳건히 지키게 위해 수년간 러시아 내전을 치러야만 했고 유혈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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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이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무자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로 정권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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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사, 김학준 저,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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