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과학이야기 | 근대 과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 2부

곰고로곰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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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  근대 과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 2부

 

 

뉴턴의 업적

1. 광학자로서의 업적

17세기 중엽은 과학이 전환기를 맞은 시대였다. 17세기 초기에는 망원경이 발명되어 천문학 연구 전반에 걸쳐 커다란 혁신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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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과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 등이 전 유럽의 과학자들을 부추겨, 지난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물리학)에만 의존하던 것을 지양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실험 관찰할 것을 주장했다. 이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주장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 저 위대한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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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스스로 창안한 망원경을 사용해 천체 관측을 함으로써 천문학 연구에 커다란 혁신을 가져오게 했다.그리고 나아가 기계와 기구등의 실험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뉴턴의 운동의 제1법칙'을 확립했다. 운동의 제1법칙은 조용히 멈추어 있거나 한결 같은 직선운동을 하는 물체는 이것에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이 무렵에 많은 과학자가 나타났다. 예컨대 하비는 인체내의 혈액 순환을 발견했고, 케플러는 태양 주위에 있는 행성 운동에 관한 세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이것은 실로 당시의 과학계에 새로운 기초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순수과학은 거의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베이컨이 예언한 대로 순수과학이 기술에 응용되리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고대 과학의 잘못된 개념을 말끔히 쓸어 버리고, 우주 전체에 대해서만 매달리지 않고 더욱 폭넓게 이해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이렇게 상호관계도 통제도 없이 수립된 과학적 사실의 집합으로부터 과학적 판정으로까지 이끌어가는 통일된 이론체계를 세우기 위한 원리원칙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한 이론들을 통일하여 그 뒤 오늘날까지 현대과학의 궤도에 올려놓은 사람이 바로 뉴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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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자기의 연구성과를 드러내어 널리 알리는 것을 꺼렸다. 그의 업적이 거의 모든 뒷받침이 되는 기본 개념은 이미 1669년까지 체계화 되어있었으나. 대부분의 이론은 그보다도 훨씬 뒤에야 발표되었다. 발견으로서 처음 공표된 것은 빛의 성질에 관한 것으로 건축공사의 기공식처럼 아주 초보적인 연구성과였다. 그 뒤로도 열심히 실험을 계속한 그는 일반적인 '' 곧 광선은 무지개와 같은 여러 가지 색의 혼합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빛의 반사와 굴절의 법칙에서 오는 여러 가지 결론을 꼼꼼히 분석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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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여러 법칙을 이용해서 그는 1668년에 최초의 반사 망원경을 설계하고 직접 그것을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천체관측에 사용되고 있는 망원경의 유형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발명 발견 이외에 그가 행한 광학 실험의 성과들은 29세 때 영국 왕립 학사원에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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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학자로서의 업적

수학에서는 1665년 이항정리의 연구를 시작으로, 무한급수로 진전하여 1666년 유율법을 발견하고, 이것을 구적 및 접선 문제에 응용하였다.1676년 그와 동일한 미분법을 발견한 라이프니츠와 우선권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는데, 이 무렵부터 그의 사고방식도 실험적 방법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그 중점이 옮겨져 스스로를 수학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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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미적분법도 실은 23, 24세에 거의 완성한 것이었다. 이 발명은 근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이것을 씨앗 삼아 그 뒤 많은 현대 수학이론이 싹텄다. 만약 이 발명이 없었더라면 현대과학의 진보는 지금처럼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미적분의 발명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그밖에 달리 아무런 공적이 없다 하더라도 위대한 수학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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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턴의 유율법

뉴턴은 데카르트와 페르마, 월리스 등이 발전시킨 무한소(無限小)’의 개념과 스승 배로의 연구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결점을 보완하여 미적분학을 확립했다. 뉴턴의 미적분학은 유율법(Method of Fluxion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 물리학자였던 그는 운동의 개념을 바탕으로 속도와 가속도의 개념을 나타내는 수학적 방법으로서 유율론을 창안하였다. 미적분학과 관련하여 1666<유율론>이라는 논문을 통해 유율에 관한 견해를 처음 밝힌 그는이어서 1671년에 <유율법과 무한급수, Method of Fluxions and InfiniteSeries>를 발표하였고(이 논문의 실제 출판은 1736년임), 1676년에는 나중에 우선권 다툼에 휘말리게 되는 독일의 학자 라이프니츠에게 유율법에 관한 두 통의 서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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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에는 <곡선의 구적(求積)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썼다. 뉴턴은 곡선을 한 점의 연속적인 운동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생성점의 가로 좌표와 세로 좌표는 모두 변하는 양이다. 그는 이 변하는 양, 한없이 커지는 양을 유량(流量, fluent)’이라고 불렀으며, 그 변화율을 그 유량의 유율(流率, fluxion)’이라고 불렀다. 유량(fluent)’이란 액체 뿐만 아니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모든 양을 뜻한다. 그리고 독립변수인 시간에 대한 유량의 변화율, 즉 흐름의 속도가 바로 유율(fluxion)’인 것이다.

 

그런데, 유율 자체도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율의 유율’, ‘유율의 유율의 유율’, ……,이렇게 차례로 새로운 유율이 나타나게 된다. 뉴턴의 표기법에서 유량은 x, y, 유율은 ẋ, ẏ, 유율의 유율은 ẍ, ÿ 와 같이 표현된다. 시간을 t로 나타낼 때, ẋ, ẏ는 각각 오늘날 dx/dt, dy/dt와 같다. 또한 유량의 모멘트(moment)’라고 불리는 또 다른 개념을 도입하였다. ‘모멘트는 무한히 작은 시간 ‘o’ 동안에 유량이 증가하는 무한히 작은 양을 의미한다.

 

1671년에 작성된 뉴턴의 논문 <유율법과 무한 급수>에 있는 한 예를 살펴보면 여기에서 뉴턴은 삼차 곡선

x 3- ax 2+ axy - y 3 = 0

을 고려했다.

 

xx+ẋo로 대치하고, yy+ẏo로 대치하면, 다음 방정식을 얻는다.

 

x 3 + 3x 2(ẋo) + 3x(ẋo)² + (ẋo)³

- ax 2 - 2ax(ẋo) - a(ẋo)²

+ axy + ay(ẋo) + a(ẋo)(ẏo) + ax(ẏo)

- y 3 - 3y 2(ẏo) - 3y(ẏo)² - (ẏo)³

= 0

 

이제 관계식 x3 - ax² + axy - y³ = 0 을 사용하고, 나머지 항들을 ‘o’으로 나눈 다음에, 아직까지도 인자로서 ‘o’를 포함하고 있는 항들을 소거하면,

3x²ẋ - 2axẋ + axẏ + aẋy - 3y²ẏ = 0

이다.

 

이 방정식을 로 나눈 다음에 ẏ/ẋ 에 대해서 풀면,

ẏ/ẋ = (3x²-2ax+ay)/(3y²-ax)

을 얻게 된다. 이것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다음과 같다.

ẏ/ẋ = (dy/dt)/(dx/dt) = dy/dx

 

위 문제의 풀이 과정에서 ‘o’의 이차 이상의 거듭제곱을 포함하는 항을 삭제하는 과정은 뉴턴의 동시대 수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나중에 뉴턴은 종국비(ultimateratio)’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그와 같은 과정을 정당화하였는데. 이 개념은 바로 원시적인 극한 개념에 해당한다뉴턴은 유율법에서 두 가지 형태의 문제를 고려했다.

 

첫째는 어떤 유량들을 연관짓는 관계가 주어지고, 이 유량들과 그것들의 유율들을 연관짓는 관계를 찾는 것이다. 이것은 연속운동에 관한 그의 개념에서 운동체가 통과한 거리를 알고 그 속도를 알아내는 것과 같고, 이것이 바로 미분법과 동치이다.

 

둘째는 유량들과 그것들의 유율들을 연관짓는 관계가 주어지고, 유량들만을 연관짓는 관계를 찾는 것이다. 이것은 역()과정의 문제로서 미분 방정식의 풀이와 동치이며, 운동의 개념에서 속도와 시간을 알고 운동체가 통과한 거리를 알아내는 적분법에 해당한다.

 

뉴턴의 미분, 즉 속도를 구한다는 것을 기하학적으로 따지면 접선법이 된다. 뉴턴은 그의 유율법을 많은 문제에 적용하였다. 그는 최대최소값, 곡선의 접선, 곡선들의 곡률, 변곡점, 곡선의 볼록과 오목 등을 결정했으며, 그 이론을 상당히 많은 곡선의 구적(求積)문제에 적용했다.

 

2)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쟁

이 두 창시자는 17세기 말부터 근래에 이를 때까지 누가 미적분학을 처음 발견했느냐에 대한 논쟁을 펼쳤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은 1665년 경 유율법 관련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미분법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고, 그 이후 라이프니츠는 1675년 경 미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1676, 편지를 주고 받으며 미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 상대의 연구를 격려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라이프니츠는 1684'분수에도...'라는 긴 제목의 논문으로 미적분을 발표했고, 뉴턴이 발표한 시점은 라이프니츠가 발표한 시점보다 20년 후인 1704년에 '광학' 이란 논문으로 발표를 했느데 당시 이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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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80년대 뉴턴의 신봉자인 파티오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말하길 "미적분은 뉴턴이 발견한 것이나 뉴턴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흘렸던 아이디어를 라이프니츠가 도용한 것이다!" 주장했고 라이프니츠가 미분법을 발표한 것이 1684년이라서 이 주장에 힘이 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가 "나의 연구는 뉴턴의 이론과 독립적으로 진행되었고, 미분법을 뉴턴보다 먼저 공표 했으니 우선권은 자신에게 있다!"라고 맞받아 친다. 물론 뉴턴은 그 때까지 미분법을 발표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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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학자들의 싸움은 라이프니츠가 독일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원장이되고, 뉴턴이 영국 왕립협회 회장이 되면서 두 나라의 국가적인 논쟁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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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두 수학자 모두 각각 독자적으로 미적분을 연구하였고, 발견은 뉴턴이, 발표는 라이프니츠가 먼저라고 과학사에 정의되어 있지만 이 두 나라의 국가적인 논쟁은 라이프니츠가 죽은 후에야 잠잠해졌다. 이 논쟁의 결말은 영국이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기호 사용을 거부하면서 영국의 수학이 독일에 100년 가까이 뒤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만약 이 논쟁이 없었다면 수학은 훨씬 발전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수학적 정의의 완벽함은 뉴턴에게, 미분학 기호의 편리성과 이론 전개는 라이프니츠에게 있는 것으로 수학계에서는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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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물리학자로서의 업적

뉴턴 물리학적 발견은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과학적으로 살피는 역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갈릴레이는 '운동의 제1법칙'을 발견하고서, 만약 외부로부터 힘의 작용을 받지 않는다면 - 이라고 물체의 운동에 대해 서술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물체는 외부로부터 '힘의 작용'을 받고 있으며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와 같은 환경 밑에서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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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뉴턴이 풀었고 유명한 2법칙으로 고전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2법칙'은 물체의 가속(예컨대 속도의 변화)물체의 질량으로 분할된 물체에 보태지는 실질적인 힘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1법칙(관성의 법칙) 2법칙(운동 방정식: 힘과 가속도의 법칙)에다 그는 '3법칙'(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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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그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했다. 이 네 가지 법칙을 설정하고, 거기에다 힘의 법칙을 곁들인 태양 궤도의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거시적인 기구역학적 시스템을 조사할 수 있도록 통일된 시스템을 창출하고 그 움직임을 예측했던 것이다. 뉴턴은 비단 역학의 법칙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미적분을 위해서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여 이 기본법칙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데 얼마만큼 활용될 수 있는가를 실제로 증명했다.

 

이렇게 하여 뉴턴의 여러 법칙은 과학적 문제라든지 기술적 문제에 아주 폭넓게 적용되고, 또 실제로 응용되었다. 그의 생존 중에 이들 법칙의 응용으로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천문학 분야였다. 이 분야에서 뉴턴은 너무도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다1687년에 출판한 불후의 명저 프린키피아는 근세에 씌어진 수학적 물리학서로 후세 200년간 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역학에 관한 업적은 모두 여기에 수록돼 있다.

 

1)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1684년 천문학자 핼리가 뉴턴을 방문했다. 당시 핼리는 태양과 혹성 사이의 인력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와 후크와는 혹성의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이론으로부터, 이 인력은 태양과 혹성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을 얻긴 했으나, 그 생각을 증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핼리가 뉴턴에게 물었다.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감소한다는 가정에 서면, 혹성은 어떤 곡선을 그리겠습니까?” 뉴턴은 서슴치 않고 답했다. “타원이겠지요왜냐고 묻는 핼리의 질문에 뉴턴은, "계산해 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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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들로부터 핼리는 뉴턴이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의 하나인 만유인력의 법칙을 해결하고 있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핼리는 그 계산을 보고 싶다고 하였으나, 뉴턴은 자신의 계산을 메모해 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 정리와 증명을 써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후에 핼 리가 너무도 권하는 바람에 뉴턴은 논문을 완성하여 왕립협회에 보내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당시에는 단지 프린키피아(Principia)라고 불리운 획기적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출판 직전에 후크가 그 법칙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했기 때문에 또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뉴턴이 이 업적의 핵심적인 장을 삭제하겠다고 위협하였으나, 핼리가 무마하여 겨우 이 위대한 고전은 완전한 모습으로 인쇄하게 된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핼리의 소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뉴턴에게 이일을 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인쇄 중에도 이를 지켜보았고, 그 자신도 별로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출판의 모든 비용을 대 주었다.

 

프린키피아는 서문과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문에는 유명한 운동법칙이 기록되어 있다. 1권에는 운동의 3법칙을 설명하고, 힘의 여러 가지 법칙으로부터 유도되는 결론을 전개하고 있다. 2권에서는 여러 종류의 유체의 운동을 논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다지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이 부분의 태반은 그 후 10년 동안에 개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3권에서는 만유인력을 논하고, 오직 하나의 힘의 법칙으로부터 직접 지상의 물체의 낙하, 달 또는 목성, 위성의 운동, 혹성의 운동 그리고 조석의 현상 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결국 뉴턴의 수학은 엄격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는 추상화된 순수 수학이 아닌 응용수학으로, 프린키피아는 수리물리학자가 쓴 수학책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외의 업적

뉴턴은 열역학이라든지, 음향학에도 큰 공헌을 남기고 있다. 또한 그랜섬시대부터 화학과 연금술에 흥미를 가져 여러 합금을 만들었으며, 열의 냉각법칙(1701) 등 광범위한 분야를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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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 근대 과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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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 근대 과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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