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세계사이야기 | 명나라의 대외관계 2부 명과 서양의 관계1. 마카오인도 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포르투갈에서 파견한 바스코 다 가마였다. 이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서로 경쟁하게 되자 교황 알렉산더 6세는 태평양의 자오선을 경계로 두 나라의 범위를 확정시켜, 이른바 교황의 식민지 분계선을 설정하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은 인도와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1517년에 광동 둔문을 점거하였다가 다음 해에 명군에게 쫓겨났다. 명은 처음에 광주에다 시박사를 두었는데, 후에 오문(마카오)으로 옮겨 마카오가 광동 대외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때문에 남양 각국의 상인들과 함께 포르투갈 상인들도 섞여 마카오로 왔다. 1553년에 포르투갈 인들은 태풍을 만났다는 이유로 화물을 마카오에 내리도록 요청하여 마카오에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세계사 및 역사이야기 2024. 9. 5.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