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서양음악사 | 바로크음악 - 소개

곰고로곰 2021. 6. 26.

 

 

 

바로크 음악(1600~1750)

14세기 초엽의 최초의 신음악이라고 불리우는 아르스 노바의 탄생이후 두 번째의 신음악이 탄생되었다. 그것이 바로크(Baroque) 음악이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16세기 말경부터 18세기 중엽까지의 보통 1600 ~ 1750 년까지의 역사적 기간과, 그 시대의 음악 양식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바로크 시대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역사가들이 1600 ~ 1750년의 음악에 바로크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은 그 음악 이 당대의 건축, 회화, 문학, 나아가서 자연 철학이나 철학과 어느 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뿐 아니라 어떤 시기에 생산된 음악이든지 간에 당대의 다른 예술에서 표현된 경향, 관념들을 그 나름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크라는 용어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그 용어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를 가진 포르투갈어 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처음 미술에 적용되었을 때는 그 시대와 양식을 르네쌍스 후에 온 예술적 퇴폐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에서였다. 즉, 바로크라는 말은 '불규칙적인 모형'을 뜻하는 포르투칼 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말은 비정상적인, 기교만 과장된, 감각이 나쁜, 괴상한 등의 헐뜯는 뜻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19C 말에와서야 점차적으로 예술비평가들은 '바로크'를 괴상하고, 과장되고, 불규칙함을 함축한 것으로 여기는 데에서 벗어나 한 시대의 정당한 표현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음악사학자들은 오랫동안 그 개념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였고, 그 대신 이시기를 지칭하는 용어들에는 계속저음의 시대, 콘체르타토 양식의 시대 또는 봉건 절대주의 시대 등이 있다. 

 

1. 단선음악(Monody)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인 것이 무엇인가? 9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배해 오던 음악적 통념은 대부분의 경우 다성음악이었다. 즉 몇 개의 성부가 얽혀서 이루는 복잡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오면서 음악은 여러 성부가 아닌 단성으로 이루어진 독창 양식을 창출한 것이다. 이것을 단선음악(Monody)이라 부르는데, 이 양식은 르네상스인들이 그리이스 고전에 대한 존경심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이다. 이상적인 그리이스의 모방은 반주를 없애고 독창 성부만 남기는 것이지만 이 단선음악은 독창과 반주의 선율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으며, 반주 는 극히 축소되어 몇 개의 간단한 수직화음으로 압축되었다. 그리하여 이 단선 음악이 급기야는 오페라를 탄생시키게되는 기초가 된 것이다.

 

오페라는 16세기 말경 이탈리아 프로렌스의 일단의 음악가와 시인들의 모임인 카메라타(Florentine Camerata) 에서 발생하였는데, 이 집단의 최초의 대변자는 갈릴레이(Vincenzo Galilei)로 유명한 천문학자의 아버지이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어 스스로 단테의 '지옥'에 비올반주에 의한 테너 독창곡을 쓰기도 하였다. 단선음악의 지도자로는 페리(Jacopy Peri, 1561 ~ 1633)와 카치니(Giulio Caccini, 1546 ~ 1618)가 있었으며, 오페라 라고 불릴 수 있는 최초의 것으로는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의 대본을 작곡한 페리의 다프네(Dafne)이다. 바로크 음악은 이탈리아의 이념에 의해 지배되었다.  17세기에는 플로렌스와 베니스가, 18세기에는 나폴리가 음악적으로 지도적인 도시였다. 또한 로마는 종교음악 분야에서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7세기 한 동안은 오페라와 칸타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든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음악을 사용하여 이념과 감정을 표현 또는 재현시키려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특정 감정 표상법(Doctrine of affection)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의 무지카 레세르바타 (Musica reservata)를 계승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음악은 '분명한 이념'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 은 17세기 철학을 지배하였던 데카르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2. 숫자 붙은 베이스

위에서 언급했듯이 르네상스가 이상으로 하였던 기본적인 음향은 독립된 여러 성부들이 이루는 다성음악이었다. 그러나 바로크의 이상적인 음악(SOUND IDEAL)은 튼튼한 베이스 위에 흐르는 선율이 붙은 것으로써, 이 베이스와 자연스러운 화성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렇게 베이스를 강조한 형태를 두고 통주 저음(Through bass), 또는 지속 저음(Basso continuo)이라 불렀다. 또한 베이스 음표 아래나 위에 화성의 성격을 숫자나 기호로 지시하기 때문에 숫자 붙은 베이스(Figured Bass)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 지속 저음은 음악이 대위법에서 화성음악으로, 선적 선율 구조에서 화성적 구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교회의 역할이 전 시대보다 비교적 덜 중요하게 된 반면, 귀족 또는 종교적 후원자들이 음악활동 을 지원하여 여러개의 아카데미가 형성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비록 널리 알려 지지는 않았지만, 지금과 같이 입장료를 받고 연주회를 공개하는 상업적인 음악회가 1672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시도되는데, 본격적인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부터이다.

 

역시 성악 부분에 여전히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오페라 이외에도 오라토리오, 칸타타등이 발전을 보였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악음악들의 많은 형식인 협주곡, 모음곡,소나타 등이 바로크 시대에 완성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작곡가로는 오페라 작곡가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17세기 중엽의 가장 위대했던 독일 작곡가인 하이리히 쉬츠, 장밥티스트 륄리, 코렐리, 존 블라우,핸리 퍼셀, 안토니오 비발디 등이 있으며, 이러한 형시의 완성자는 바로 잘 알려진 헨델(1685 ~ 1759) 과 바흐(1685 ~ 1750)이다.

 

헨델과 바흐

 

3. 감정표현

바로크 시대의 음악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은 작곡가에 따라서 대담하거나 격렬하게, 때로는 생소하게 표현되어서 전통적인 양식에 익숙해 있었던 작곡가들이나 이론가들은 이러한 표현양식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진보적인 작곡가들은 선율, 리듬, 화성구조 등을 변화시켜서 가사를 중요시하는 감정표현을 위하여 계속 노력하였다. 이들은 감정표현을 위한 창작의 순서를 inventino(주제를 찾는 것), dispositio(작품을 계획하고 윤곽을 잡는 것), elaboratio(작곡하고 장식하는 것) 등 세 단계로 진행시켰다. 이와 같은 창작 과정을 통한 감정의 묘사는 성악음악 뿐만 아니라 기악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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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성과 리듬

, 단조의 조성체계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바로크 후기까지도 장, 단조 체계가 선법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였다. 16세기 글레리안의 이오니아 선법은 C장조와, 에올리아 선법은 A단조와 음계 구조가 같다. 그러나 선법은 음악 구조를 선율과 음정의 관계로만 보았고 화성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오니아와 에올리아가 직접 장, 단조 음계로 바뀌어 지지는 않았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와서 바소 콘티누오에 의해 선율이 화성의 토대 위에 서게 되었고 이러한 기법은 화성진행에 따른 조성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바로크 리듬은 강, 약의 규칙적인 리듬이 반복되는 춤곡의 리듬 유형과 가사에 따른 자유로운 리듬을 추구하는 극음악의 리듬 유형을 음악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바로크 음악의 이원성은 전통적인 리듬과 진보적인 리듬을 공유한 바로크 리듬에도 적용된다 하겠다.

 

 

서양음악사 | 바로크음악 - 특징 및 음악가

바로크 음악의 특징 바로크의 새로운 음악양식은 전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동시에 발전된 것은 아니었다. 음악에 있어서 양식의 변화는 1560년경에 베네치아에서 일어났는데, 1580년에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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