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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이야기 | 이슬람 전통의 상징 히잡 그리고 혁명!

곰고로곰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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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Hijab)을 착용한 무슬림 여성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 착용 관습은 9.11 테러사건 이후 인권문제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현재 담론화한 논쟁으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벌거벗은 세계사 E78

 

 

베일 착용의 시대별 의미와 기원

히잡*의 착용은 각 시대별로 그 의미와 기능을 달리했다.

* 히잡 : 이슬람 사회에서 통용되는 베일은 국가와 민족에 따라 그 명칭과 모양을 달리하는데, 일반적으로 아랍국가에서는 히잡(Hijab)으로 통용된다. 이것은 ‘꾸란(코란)’에 언급된 의상이라고 전해지며, 두건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리아나 튀니지 등에서 주로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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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것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종교적 믿음보다는 문화적 전통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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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에게 이것은 자치권의 상징이었으며, 페르시아인과 메소포타미아인에게는 배척과 특권을, 이집트에서는 평등을, 그리스 문화에서는 계급을, 비잔틴 문화에서는 격리를 의미했다. 이렇게 기능과 의미가 달랐던 이유는 각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치적 맥락에 따른 것이었다

 

수메르족은 최초로 고대국가를 출현시켰고, 그들에게 있어서 도시국가의 성장과 막강한 군사력은 남성이 우위를 확보하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가족구조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 구조로 변화하고 여성의 지위는 급격하게 추락한다. 급기야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숭배 사상마저 남신 숭배 사상으로 대치될 정도였다.

 

도시국가가 자리를 잡아가자 여성에 대한 규제는 갈수록 엄격해진다. 먼저 함무라비 법전에서 여성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시작되는데, 아시리아로 가면 법조항에서 그 내용은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낸다. 당시 수많은 원정으로 영토를 확장한 아시리아는 많은 포로를 소유하게 되었는데, 법전에 이 포로(여자)를 아내로 합법화하는 과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약 남자가 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으면 이웃 사람 중에 5~6명을 소집하여 그들 앞에서 베일을 선물하며 나의 아내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베일을 씌움으로써 그들의 미시권력이 여성의 몸에 적용됨을 알 수가 있다.

 

이 밖에도 아시리아 법은 베일 착용을 해야 하는 여성의 범위를 아래와 같이 명시하고 있다.군주의 아내와 딸은 베일을 써야 한다. 첩들도 역시 베일을 써야 한다. 종교적 의미로 신전에 바쳐진 성창으로서 현재 결혼한 여성도 베일을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노예나 매춘부는 베일을 쓸 수 없다. 만일 불법으로 베일을 쓰다가 적발될 시에는 태형에 처하거나 귀를 자름으로써 벌한다.’ 법전은 결혼한 여성과 첩, 자유로운 여성과 노예, 매춘부각각에 대해 베일을 언제 착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 또한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기에는 베일 착용이 여성이 어느 남성에게 속해 있는지, 아닌지를 구별해 주는 하나의 상징물로써 사용된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상류층 여성들도 모두 베일을 착용했다. 이 시기에도 남성들은 여성이 베일을 착용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여성을 다르게 대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여성이 베일을 두르지 않으면 남성의 정욕을 일으킨다고 믿었는데, 이런 사고는 비잔틴 사회에까지 지속된다.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의 문명과 전통이 형성된 곳이기에 이곳의 베일 착용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잔틴 제국은 로마의 제도와 이념을 이어받았고,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헬레니즘 문화를 계승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미 이슬람을 받아들였던 아랍인이나 터키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기에, 이 시대는 그리스도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딸이 목욕을 갈 때에도 어머니는 딸이 베일을 착용했는지 안 했는지를 살펴 여성의 보호자인 샤프론과 함께 보낼 정도였다.

 

비잔틴 제국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결혼의 목적의 재생산에 두었을 뿐 여성에 대한 배려나 존중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금욕주의의 영향으로 육체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중점을 두었기에, 점차 여성의 몸은 가려져야 할 수치스러운 것으로 관념화되어갔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속에서 여성들은 당연히 베일 속에 숨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 이 시기에 베일 착용은 여성의 정숙함을 내세우며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려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작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잔틴 시대의 관행은 이슬람의 전통적 여성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통해 중동지방에서 고대국가가 수립되고 법과 제도가 마련되면서부터 여성의 베일 착용이 이루어 졌음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베일을 써야 하는 여성이 베일을 쓰지 않거나 베일을 쓸 수 없는 여성이 베일을 썼을 때, 가부장 권력은 형별을 가하는 등의 감시와 제재를 동원하여 여성을 길들인다. 이렇게 여성의 몸과 성은 국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되는데 이 때 베일이 상징적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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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아시리아 법에서처럼 베일은 단순히 상류계층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 여성이 보호받을 만한여성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이었고, 남성 자신이 접근의 가능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따라서 베일은 당시 성문화 질서 유지에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베일의 착용과 더불어 여성의 몸과 성적 욕망을 통제하게 되자, 가부장제는 더욱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게 되고 여성의 현실을 더욱 악화되었다.

 

심지어 알렉산드로가 페르시아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확장해놓은 하렘*이 왕족들에게까지 보편화될 정도였다. 하렘의 격리는 마치 사회의 본보기인 마냥 순식간에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사회의 기본 관행으로 고착화된다. 문화적 요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여성의 비하의식은 지중해 사회 전면에 자리 잡고, 여성의 몸은 가려져야만 한다는 베일 착용 관행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 하렘 :  왕족의 특권. 다른 곳과는 격리되어 있었으며 환관이 수호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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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착용의 의무화

이슬람교 이전에도 베일은 엄연히 존재했었으나, 본격적으로 제도화되진 않았었다. 베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제도화시킨 것은 바로 이슬람이었다. 어떻게 이슬람이 베일 착용을 제도화의무화시키는 것이 가능했을까. 여성의 베일 착용이 제도로서 자리 잡게 된 경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슬람 초기에는 베일 착용 의무화 규정은 별로 지켜지지 않았다. 무함마드가 살아 있을 당시, 베일 착용과 같은 여성 격리 제도를 따르는 사람은 오직 무함마드의 아내들뿐이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사후, 무슬림은 상업을 통해 이루어진 부의 유입을 통해 아랍인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고 부유한 계층의 무슬림 여성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 상류층 여성들은 무함마드의 부인들을 자신의 본보기로 삼았다. 그들은 자연스레 이슬람 율법에 따라 베일을 착용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동화되고자 했던 피지배계층 여성들에게까지 베일은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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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하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히즈라 6년에 바누 무스탈리크 정벌에 따라간 아이샤가 조개목걸이를 잃어버려 본 대열과 떨어져 길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샤프완이라는 청년이 그녀를 구해준다. 예언자를 비난하던 이들은 아이샤와 샤프완이 불륜관계를 가졌을 것이라 추측했고, 마침내 무함마드의 부인 자격을 거론하는 데까지 사건이 번졌다. 문제는 이때 아이샤가 베일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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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가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도록 강제한 것은 이 사건 때문만이 아니었다. 당시 여성은 노예이건 아니건 간에 길거리에서 습격의 대상이었다. 무함마드의 부인들조차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베일을 쓰도록 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예여성은 베일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계급에 따라서 보호받을 수 있는 여성과 아닌 여성을 구분했기 때문이었다.* 베일 착용은 제도화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이슬람 내에서 줄곧 많은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베일 착용에 관한 꾸란(코란)의 해석과 적용이 해당 구절의 애매성과 불명확성으로 견해 차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 이는 여성의 신변 보호를 주장하는 이슬람의 ‘여성 보호관’을 무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는 동등하다.’는 그들이 평소 주장하는 평등원칙에 어긋난 행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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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회의 히잡 착용

1. 무슬림 여성

서구인들이 무조건적으로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 자율성을 빼앗긴 인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이란에서처럼 정부의 처벌과 통제 때문에 강압적으로 히잡을 쓰는 것은 엄밀하게 여성의 자유의지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은 행위이므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순 없다. 또한 규정을 어겼을 경우, 구타나 가혹한 체벌로 이어지는 것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베일 착용이 강요되지 않는 나라에서도 무슬림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베일을 착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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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발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공동체와 같은 사회의 시선은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좀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사회문화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히잡을 착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베일로 몸을 가렸을 때 더욱 남성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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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보적 계몽주의자와 이슬람 원리주의자

근대화 이전까지 모든 중동 국가에서 베일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있어서 정체성을 표상하는 하나의 도구였다. 그런데 근대화의 도래와 함께 베일에 착용에 관한 반론이 제기된다. 서구 문명의 충격을 받은 진보적 계몽주의자들이 이슬람 사회의 개혁을 위해 여성의 격리와 베일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여성의 베일을 없애야만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또 사회 변혁까지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이들은 여성의 베일을 개혁의 상징적 도구로써 여기고 이것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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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민족의 근대정치사는 피식민지라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슬람 원리주의들은* 오늘날 이슬람 세계를 분열시키고 타락시킨 장본인은 서구 제국주의이며, 이슬람을 수호하는 것이 바로 이에 저항하는 길이라 믿는다. 앞서 계몽주의자들이 히잡을 개혁의 상징적 도구로써 봤다면, 원리주의자들은 히잡을 일종의 저항의 도구로 인식한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집권한 몇몇 나라를 보면 이슬람 근본원리를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한다는 믿음 아래 강제적으로 베일 착용을 의무화시킨 것을 알 수가 있다.

*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것은 이슬람 사회의 외적인 압력과 내적인 위기가 직접적으로 반응하여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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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착용 논쟁

파키스탄 펀자브주 정부의 한 여성 장관이 히잡(Hijab)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슬람 광신도에게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히잡을 쓴다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 사건 중 하나이다. 도대체 그들에게 있어서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서구 언론은 히잡 착용 행위에 관하여 인권 탄압의 기제라며 강력히 비판을 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실례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이유로 소방관들이 구출해주지 않아 건물에 있던 여성 모두가 불타서 사망한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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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히잡 착용은 인권문제 논쟁의 정점에 있는 한편 문명 충돌의 접점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 사건의 발단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 머스코기시 교육청은 2003109일 이슬람 여학생에 대해 히잡을 착용하고 수업을 받으려 한다는 이유로 정학 조치를 내렸다. 이 여학생은 5일간의 정학 조치 후 다시 학교로 복귀했지만 또 정학 조치를 당해야 했다. 이에 교육 당국은 학교 건물 내에서 모자 등의 착용이 금지돼 있다는 규정을 들어 우리는 종교적 요구에 대해 가능한 한 중립을 견지해야 하며, 한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발표했다.

 

또한, CAIR(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 측은 이번 조치는 학생의 자유로운 종교 실현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미 법무부는 이는 종교적 차별 행위라며 2004330일 오클라호마 교육 당국을 고소했다. 법무부장관은 복장 기준을 정하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지방교육 제도의 권위를 존중하지만 이런 규정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며 소송을 진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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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은 결국 히잡 착용을 인권 유린이라는 시각과 문화적 차이로 봐야 한다는 두 가지 시각으로 귀결되는데, 프랑스에서 더 본격적으로 터지게 된다. 2003115일 자크시라크 대통령이 여학생들의 교내 히잡 착용 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발표하자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후 2004831일 프랑스는 무슬림 여성의 베일 착용 금지법을 제정한다. 이 법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입각해 제정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부르는 결과를 낳았다. 이 법의 골자는 공립 초고등학교 내에서 명백한 종교 상징물 및 차림 금지, 법수용을 거부할 경우 일정 대화기간을 거쳐 퇴학처분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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