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의 혁명 나일론의 역사 - 듀폰과 캐러더스
나일론(nylon)이 처음 등장한 이후, 나일론의 다양한 용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나일론은 이전의 재생 셀룰로오스로 만들어진 레이온이나 아세테이트와는 달리 순전히 석유화학 제품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인조섬유로, 합성섬유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나일론은 섬유뿐만 아니라 현악기의 줄, 테니스 라켓 줄과 같은 운동기구, 산악등반용 밧줄이나 낚싯줄, 비행기 타이어, 낙하산, 방탄복, 여행용 가방, 카펫 그리고 각종 공구에 이르기까지 수천 가지의 용도로 쓰이며,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으로 달에까지 갔다 온 매우 중요한 합성고분자이다.
나일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화학적 용어로 설명하면, 나일론은 두 개의 카르복시기(-COOH)를 가진 유기산과, 분자 속에 두 개의 아미노기(-NH2)를 가지고 있는 화합물 사이에서 축중합에 의해 얻어지는 합성고분자 폴리아마이드의 총칭으로 아마이드결합(-CONH-)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듀폰(DuPont)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며, 최초의 인조섬유라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나일론의 발명이라는 드라마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이윤 추구가 목표인 실용적인 기업과, 순수과학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 사이에서의 적절한 긴장관계가 어떻게 혁명적인 발명으로 이끌어 갔는지 살펴본다. 나일론의 탄생에 대한 비화는 듀폰 드 느무르(duPont de Nemours) 가문과 듀폰사, 그리고 나일론 발명가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의 이야기로 얽혀져있다.
흔히 듀폰이라고 불리는 회사의 정식 이름은 ‘E.I. 듀폰 드 느무르 회사(E. I. du Pont de Nemours and Company)인데, 1802년 미국에서 설립되어 시가총액 기준 세계 3위의 화학회사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듀폰 드 느무르 가족이 세운 듀폰사의 창립 스토리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 때, 경제학자이며 은행가, 작가인 듀폰 드 느무르 자작이 단두대를 피해 두 아들과 가족을 데리고 1799년 미국으로 이민 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듀폰의 아들 중 하나인 엘뢰테르 이레네 듀폰은 바로 이 라부아지에 밑에서 화약제조를 도왔던 화학자로, 19-20세기에 걸쳐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부유한 기업 왕국의 하나인 듀폰의 창시자이자 수장이다. 엘뢰테르는 미국에서 제조된 화약의 질이 형편없다는 것에 주목하여 프랑스에서 번 돈으로 프랑스로부터 화학기계를 수입하여, 1802년 미국에 화약회사를 설립한다. 듀폰사에서 제조된 화약은 품질이 상당히 좋았다.
그런데다 프랑스혁명 이후 영미전쟁, 멕시코전쟁, 미국 남북전쟁, 그리고 철도 건설붐 등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화약 수요가 급증하자 듀폰은 창립 첫 세기인 1800년대에 크게 성장했다. 남북전쟁 동안에는 북부군이 사용한 화약의 절반을 공급할 정도로 미국 군대의 최대 화약 공급처가 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듀폰의 군수품 매출은 1914년 2500만 달러에서 1916년에는 3억 1800만 달러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이러한 놀랄만한 실적도 끝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경영진은 사업의 다각화 전략을 세운다.
1914년 피에르 듀폰은 이제 막 시작된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가져 제너럴 모터의 주식을 사들여 나중에 GM회장직에 오르면서 1919년 동생 이레네가 듀폰의 회장이 된다. 이레네 듀폰은 다각화의 일환으로 화학약품에 부가가치를 더한 오늘날 소위 ‘정밀화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듀폰은 모든 종류의 폭발물 외에도 염료, 의약품 그리고 직물용 섬유 등 다양한 화학분야 회사들을 인수하여 자회사로 만든다.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에서도 화학공업 분야에서 연구개발이 본격화 되는데, 미국에서는 최초로 듀폰이 산업 연구실을 설립하여 셀룰로오스 화학, 광택제, 그 외 비폭약 생산품에 대한 연구를 한다. 듀폰은 처음으로 체계적인 대규모 기초연구에 착수했다. 과학적 발견을 통한 기업 성장을 목표로 장기간의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듀폰의 신념과 헌신의 결과, 세계 최초의 중요한 몇몇 합성 재료들의 발명을 가져왔다.
듀폰의 연구개발을 돕던 스타인 박사는 유기화학부서의 팀장으로 캐러더스라는 사람을 채용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버드 대학 유기화학 강사인 캐러더스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훗날 나일론을 발명하는 캐러더스와 듀폰사의 서로 엇갈린 행로가 시작된다. 캐러더스는 네오프렌 합성고무와 나일론 제조에 대한 연구를 이끌며 고분자 과학에 중요한 기여를 한, 매우 뛰어난 인물이지만 끝내 삶의 마지막을 자살로 끝낸 비운의 인물이다. 1926년 하버드 대학에서 폴리머에 대한 연구를 하며 촉망받는 유기화학자로 인정받던 캐러더스는 순수 연구만 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고 듀폰 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1930년 듀폰사의 캐러더스와 그의 연구팀은, 20세기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합성 고분자들 중 두 가지, 즉 네오프렌과 나일론을 발명한다. 듀폰이 상품명으로 네오프렌이라고 명명한 이 폴리프로필렌은 비록 싸진 않지만 O-링이나 잠수복 같은 많은 응용 분야에서 천연고무보다 우수한 특수고무로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캐러더스가 합성고무와 합성섬유를 발견한 지 몇 개월이 안 되어 연구원들을 잘 이해해주던 스타인 박사는 승진해 떠나고 후임으로 볼튼이라는 사람이 듀폰 연구소장으로 부임해 온다.
볼튼은 스타인과는 달리 순수 연구보다는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구체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캐러더스 팀이 발견한 최초의 합성섬유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생각하여 상업적 가치가 있는 좀 더 안정된 섬유를 개발해 줄 것을 캐러더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이런 목적지향적인 연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캐러더스는 문제해결을 위해 몇 번 시도해본 뒤 곧 손을 떼고 예전에 하던 방식대로 곧 다른 연구로 옮겨간다. 캐러더스가 이렇게 연구주제로 오락가락하자, 볼튼은 캐러더스에게 포기하지 말고 좀 더 넓은 분야의 섬유를 연구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마침내 캐러더스는 1934년 초, 이 분야의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의 팀은 폴리에스테르 대신 폴리아마이드를 합성하기 위해, 글리콜 대신 아민을 사용했다. 폴리아마이드는 합성된 단백질로, 구조적으로 폴리에스테르보다 좀 더 안정하다. 캐러더스 연구팀은 얼마 후 탁월한 폴리아마이드 섬유를 발견한다. 볼튼은 나중에 ‘나일론’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발견을 상업화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캐러더스는 나일론을 발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을 앓고, 41세 생일 이틀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나일론은 듀폰의 캐러더스가 1935년 처음으로 제조한, 일반적으로 지방족 폴리아마이드로로 알려진 합성 폴리아마이드족의 통칭이다. 나일론은 폴리머들 중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들 중의 하나로, 이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일론 6-6이다. 나일론 6-6은 6개의 탄소원자를 가진 다이아민 단량체와 6개의 탄소를 가진 2산 단량체로 만들어졌다는 뜻인데, 볼트는 녹는점이 높고 유기물에 녹지 않으며, 콜타르로부터 추출되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출발물질인 벤젠으로부터 중간물질을 만들 수 있어,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 6-6을 상업화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를 상업화하기 위해서는 연구실에서의 작업을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생산비 절감을 위해 고압합성 기술을 이용해 나일론을 제조할 수 있는 중간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 외에도 상업화를 위해서는 연구실에서의 작업을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생산비 절감을 위해 고압합성 기술을 이용해 나일론을 제조할 수 있는 중간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 외에도 상업화를 위해서는 생산된 나일론을 가지고 실제로 실과 옷감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볼튼이 1935년 7월 나일론 6-6을 상업화하기로 결정한 후, 제품으로 나오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나일론 개발 프로젝트는 크게 3단계로 나뉘어진다. 첫 단계는 상업적 성공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시기, 두 번째는 나일론 섬유를 뽑아내는 방법을 결정하는 단계로 1936년 여름부터 1937년 말까지 계속 되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다리에 딱 맞는 양말’류를 생산하는 데 집중한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듀폰은 균일한 품질을 지닌 방적사를 대량생산하는 연구를 했다.
마침내 ‘탄소, 물, 공기’로 만들어진 나일론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나일론 스타킹을 신은 여성 모델을 등장시키며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나일론의 날’이라고 알려진 1940년 5월 16일, 나일론 스타킹이 전국의 상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7개월 후에는 전국적으로 400만 켤레의 스타킹이 판매에 들어가 나흘 만에 다 팔리며, 1941년까지 나일론은 양말류 시장의 30%이상을 점유한다.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생산된 나일론은 모두 군수용으로 전용된다. 나일론은 낙하산, 타이어 코오드, 비행기 연료탱크 등의 제조에만 허용되어 미국의 전쟁수행을 도왔다.
여성들은 나일론을 예전처럼 흔하게 이용할 수 있기를 열망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배급이 완화되자, 나일론 스타킹은 다시 상점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 후 2년 동안 공급이 수요에 훨씬 못 미쳐 여성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1945년 미국 내 곳곳에서 한 켤레의 스타킹을 사기 위해 수백, 수천명의 여성들이 줄을 서면서 ‘나일론 아수라장’이 일어난다. 스타킹을 사기 위해 여성들 사이에 머리채를 꺼들며 싸우는 일이 벌어지는 등의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나일론 스타킹은 곧 다가올 패션혁명의 막을 열었다.
나일론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합성 섬유로서 폴리아미드계 합성 섬유에 붙여진 일반명이다. 나라별로 또는 생산회사에 따라 명칭이 다르고, 나일론은 거미줄보다 가늘고 마찰에 강하며 인장강도가 다른 섬유보다 월등, 양모보다 가볍고 젖어도 강도에는 변함이 없으며 탄력성과 보온성도 겸하고 있다. 충해를 받지 않는 특성도 갖고 있어 의복에서부터 산업용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뛰어난 합성 섬유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늘 함께 해 온, 옛날부터 사용되어 온 물질(물건)의 출처, 발명가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섬유산업의 혁명을 일으킨 나일론의 발명가는 위에서 읽어보았듯이 월리스 캐러더스이다. 그는 일리노이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일리노이대학과 하버드대학의 유기화학 강사를 거쳐서 1928년에 듀폰사의 중앙연구소 유기화학부장으로 초빙되고, 그곳에서 평생의 순수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지만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그의 삶을 무엇이 힘들게 한 것일까? 깊은 조울증을 앓고 있었고, 끝내 알코올 중독까지 이르게 되는데 대단한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발명하고도 그는 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캐러더스는 연구의 자율성과 순수성이 저해될 것을 우려해 처음에는 듀폰 사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자신의 지식으로부터 금전적 이득을 얻는다는 생각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의 인문학적 고뇌는 바로 이런데서 온 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그는 나름 자신의 지식과 관련된 경제적 이익에 따른 회의감도 들었을 거로 생각이 든다. 또 많은 것을 이루려고 평생을 연구와 발명에 노력한 만큼 그에 따른 남모를 책임감과 희생이 그의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은 아닌지.. 1936년, 캐러더스는 기업 소속 유기화학자로는 최초로 미국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얻지만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등으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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