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어원 및 역사
1. 커피의 어원
커피나무 열매(Cherry)속의 씨앗(생두, Green Bean)을 볶고(원두, Coffee Bean), 물을 이용하여 그 성분을 추출하여 만든다. 어원은 아랍어인 카파(Caffa)로서 힘을 뜻하며,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문헌 속의 커피 역사
커피가 문헌으로 기록된 것은 900년 경부터 시작이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커피는 음용의 형태이기보다 약용이나 종교적 의식에 사용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의학자인 라제스는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그리스의 의학을 집대성한 '의학집성'에서 커피를 처음으로 약으로 기술하였다. 본격적으로 음료로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이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을 금기했기 때문에 커피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고 그 당시 이슬람권을 지배했던 지금의 터키에 의해 음료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소개된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되며, 전파 경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며 고종순종실록에 의하면 커피를 ‘가배차’라고 기록하고 있다. 1895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다는 공식 문헌의 기록이 있다.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karl Ivanovich Veber)가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소개한 것이다. 그뒤 러시아공사 베베르(karl Ivanovich Veber)의 미인계 전략으로 한국사교계에 침투한 손탁이라는 독일 여자가 공사관 앞에서 ‘정동구락부’를 경영하였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에 처음등장하는 다방이다
고종황제는 덕수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해 종종 끓여 마셨을 만큼 커피 애호가였다. 그러나 그토록 좋아했던 커피 때문에 죽을 뻔 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1898년 9월, 러시아어 통역관 김홍륙이 고종황제에게 앙심을 품고 음식을 담당했던 김종화를 매수해 고종이 즐겨 마시던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게 한 것이다. 다행히도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던 고종황제는 평소에 마시던 커피 맛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금방 뱉어내어 다행히 목숨은 건지게 되었으나 황태자 순종은 한 모금 마셔 그 후유증으로 평생 병약하게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커피는 왕실에서 고급관료들을 거쳐 양반들에게로 전해졌지만, 일반 서민들이 접하기에는 아직 먼 음료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은 러시아 공사관 근처의 손탁호텔 1층에 있었다. 독일계 러시아 여성인 손탁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건물을 허물고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손탁호텔이었다. 이 호텔 1층에 ‘정동구락부’라고 불린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이 등장하게 된다. 왕실에서만 즐기던 커피가 드디어 서민들에게도 소개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서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림 1] 1902 년 10 월 서울중구 정동 이화여고 자리에 들어선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 이 건물은 외교관들의 사교와 로비의 장소로 활용되었고 , 반일 성향의 외교관 사교클럽인 ‘ 정동구락부 ’ 집회 장소로 사용된다 . 이후 이건물을 헐어내고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 이호텔의 1 층에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가 등장하게 되는데 왕실의 커피가 드디어 백성들에게도 소개된 것이다 . 오른쪽사진은 ‘ 정관헌 ’ 의 모습이다. 그리고 1924 년 이후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다양한 산업들을 진행하면서 서울에서 시작되었고 6.25 전쟁 중 미군을 통해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었다. 1999 년 이대에 스타벅스 1호점의 등장과 함께 원두커피 시장도 천천히 성장하여 왔다.
일제 강점 기간 동안 일본식 다방들이 잇따라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 예술, 문학, 철학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영화인들이나 문학인들이 직접 경영함으로써 예술인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바로 시인 ‘이상’이었다. 이상은 기생 금홍과 함께 1993년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열었으나 장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어서 ‘쓰루’, ‘무기’ 등의 이름으로 다방을 열었으나 곧 문을 닫았다.
1930년대에는 문학행사를 많이 열었던 소공동의 ‘프라타스’가 있었고, 명동에는 명곡 음악 감상실이었던 ‘에리사’, 러시아풍의 카페 ‘트로이카’, 외상 카페로 유명한 ‘라일락’ 등의 다방이 생겨났다. 1940년대에 들어서서는 음악다방 ‘휘가로’, 예술인들의 집합소 ‘노아노아’, 규모가 가장 컸던 ‘오리온’, 프랑스풍의 ‘나전구’, 독일풍의 ‘윈’, 그리고 일본식 다방 ‘이견’이 유명했다. 해방이 되면서 다방의 중심은 명동으로 옮겨졌다.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 ‘봉선화’, ‘마돈나’ 등의 다방이 문학, 예술, 철학을 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다방은 이 시기에 서울 시내 곳곳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서민들도 이전보다 커피를 접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러다가 6. 25전쟁 때 주한미군을 통해 들어온 인스턴트커피는 우리나라 커피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60년대에는 한때 흐트러진 커피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다방의 출입을 금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제재를 가했음에도 이 시기는 다방 문화의 전성기였다. 미군을 통해 들어오던 커피가 전부였던 이때(1968)부터 미주산업의 MJC 원두커피와 동서식품의 맥스웰 배전두커피가 본격적으로 제조되었다. 본격적인 커피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맥스웰하우스’라는 인스턴트커피가 만들어졌고, 곧이어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린 ‘프라마’가 만들어지면서 다방커피가 생겨났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마담과 레지가 등장했으며, 다방은 만남의 장소, 데이트 장소,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열띤 토론의 장으로 변모해 갔다. 또 음악다방이 생겨나면서 변변히 모일 장소가 없던 대학생들에게 좋은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적은 양의 커피로 많은 커피를 만들어내야 했던 주방장들은 커피를 내릴 때 소금을 넣어 바디를 높였으며, 담배꽁초 필터를 삶아 커피와 섞어 잔 수를 늘리는 일명 ‘꽁피사건’까지 일어났다. 이후 1978년에 커피 역사에 일대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커피자판기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굳이 다방에 갈 필요가 없어졌으며, 다방보다 훨씬 싼 값에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982년경 국내 최대의 커피회사인 동서식품에서 진공 동결건조 커피인 맥심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영업 전략을 잘 세워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주방장이 없어도 맥심 커피 2스푼, 프리마 2스푼, 백설탕 3스푼을 넣고 뜨거운 물만 부우면 완벽한 커피가 된다고 홍보한 것이다. 이는 그 당시 다방 주방장들의 횡포를 잠재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방 주인들은 일당이 싼 아줌마들로 기존의 주방장을 대신하게 했는데, 그 결과 서울의 9,000여 곳이나 되는 다방이 원두커피에서 인스턴트커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또 미국의 맥스웰하우스 커피 본사 전시실에 있는 세계 5대 커피 제품 중 하나인 ‘커피믹스’가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었다. 커피믹스의 황금 배합이라 일컬어지는 인스턴트커피 15%, 커피 크리머 30%, 백설탕 55%의 성분 비율은 이때 생겨났다.
1987년에 커피의 수입자율화가 발표되면서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원두커피가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거리에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데 한몫했다. 아마도 이즈음부터 사람들은 인스턴트커피를 ‘다방커피’라고 부르게 된 듯하다. 한창 유행처럼 번지던 셀프 서비스 원두커피전문점은 값싼 원두로 맛없는 커피를 만들어내더니 결국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는데, 대접받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셀프서비스는 낯설고 익숙지 않은 개념이었던 것 같다. 반면 인스턴트커피는 커피 자동판매기의 보급 확대와 함께 커피믹스, 캔 커피의 개발로 그 시장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비록 원두커피 전문점이 사라지긴 했지만 원두커피의 수입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가정이나 회사에서 원두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고급 커피하우스와 레스토랑이 점차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에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되면서 치솟은 환율 때문에 원두커피의 수입이 줄어들자 생두를 수입해 직접 로스팅하는 작은 규모의 커피 회사가 많이 생겨났다. 본격적으로 국산 원두커피의제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1999년에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오픈하면서 좋은 품질의 에스프레소 커피와 테이크아웃, 셀프서비스라는 새로운 커피 문화를 선도하기 시작하였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또 다른 커피 전문점의 증가를 불러왔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는 수요층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러한 커피의 대중화와 더불어 커피에 부과되었던 특별소비세가 2000년 1월 1일 0시를 기해 없어지면서 생필품의 하나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커피의 역사는 인류의 근대사이다. 커피는 인간이 마시는 기호음료 중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음료이며, 경제적인 여유와 비례한다. 그래서 커피 소비량이 많은 나라는 거의 대부분 선진국이다. 커피를 즐기는 습관은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이제는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의 경제 중심축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 문화를 알면 민족성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커피의 역사를 알면 현대를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커피의 전래 이야기
1. 만병통치약으로 유럽에 소개된 커피
아랍의 약으로 알려진 커피는 온갖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나중에 아랍인들이 약효 때문이 아니라 커피의 향을 즐기기 위해 마신다는 것을 알고 음료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때 아랍은 이미 원두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랍인들은 그들의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싹이 터서 발아할 수 있는 종자의 반출을 막고, 열매를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 외국인은 커피농장 방문을 금지하였으며, 몰래 원두나 묘목을 숨겨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당했다. 그러나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은 원두를 가지고 나오기도 하였다.
2. 마침내 유럽에 소개된 원두커피
1616년 마침내 네덜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부터 원두를 입수해 유럽으로 밀반출했다. 이후 70년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플랜테이션에서 커피를 재배하였고 커피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있는 음료가 되었다.
3. 프랑스에 커피나무가 전래된 것은 1714년
암스텔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커피나무를 선물한 것이 커피나무의 프랑스 첫 진출이다. 그러나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할 수 있게 된 것은 노르망디 출신의 젊은 군인 끌리외의 공이었다. 루이 14세의 정원에서 커피묘목 몇 그루를 구한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인 마르티니크 섬으로 향했다. 항해 중 자신의 식수까지 커피나무에 주며 섬으로 옮겨 심는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번성한 커피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올겨졌다.
4. 식민지시대 커피와 이효석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 슥 푸 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中-
이글을 보면 이효석은 낙엽타는 냄새를 갓볶아낸 커피의 냄새로 느끼고 있다. 이효석은 평소 커피를 즐겨마시는 사람이다. 식민지시대에는 일반백성들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였다.식민지 시대 다방은 문화인이나 예술인들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가인 이효석은 커피의 향을 낙엽타는냄새에 비유해 글을 만든것이다.
5. 식민지시대 카페의 모습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창업한 다방은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이 개업한 ‘카카듀’이다. 손님이 적어 수개월 만에‘카카듀’는 문을닫음 이어서 1929년에 심영이 지금의 종로2가 YMCA근처에 ‘멕시코’를 개업 1930년대 이전에 개업한 다방이 적자를 면하지 못한것과 달리 1930년대 초반에 이순석이 개업한‘낙랑파라’는 수지맞는 경영을함 당시 다방을 경영하던 사람 중에는 예술가들이 많았다. 그더북에 다방은 유흥공간이면서 동시에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에 ‘이상’도 종로1가에 다방‘제비’1933년에개업 ‘제비’는 벽면이 유리로 되어 밖의풍경을 내다 볼수 있었다. 경영난으로 제비는 문을 닫게되어 그후 이상은 카페 ‘쯔루’를 비롯하여 ‘식스나인’과 ‘무기’를 개업하려했었다. 처음 ‘식스나인’의 개업을 허가했던 종로경찰서는‘식스나인’이 성체위를 뜻하는것을 알고 영업허가를 취소했다. 또한 영화배우인 복혜숙은‘비너스’다방 개업 처음에 차만팔았던‘비너스’는 나중에 ‘바’를겸해서 이른바‘주간다실 야간살롱’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현민은 [현대적다방이란] 글에서 다방을‘차를 파는 다방’과‘차를마시는 기분을 파는다방’으로 나누고 있다.
다방은 문인,예술가,학생들의 안식처이자 일탈의 장소였다.1930년대는 다방들을 전전하는‘다점 순례’가 취미로 되었다.그러나 다방은 지식인의 무기력,무의지,물질적 결핍,진퇴유곡의 처지를 나타내는 곳이기도 하였다.이처럼 다방은 실업자지식인들의 집합소였다.그러나 다방은 단순히‘게으른 몽상가들’의 안식처만은 아니었다. 다방은 문화인과예술인의 집합장소였다. ‘낙랑파라’는 당시예술가들의 안식처이자 창작의 산실이었던대표적인 다방이다. 해외문예파가 주로 출입하였다.‘낙랑’은 서재겸 공동토론장으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문인들은 다방에 모여 조용히 시상을 닦거나 소설을 구상하였고,영화인들은 외국영화나 외국배우들에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커피와 관련된 전설
1. 칼디의 전설
기원전 6 ~7세기경 에디오피아의 염소 치는 소년인 칼디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칼디는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칼디가 기르던 염소들이 갑자기 춤을 추듯이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이상하게 생각한 칼디는 염소들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광경을 발견하였다. 염소들이 숲속에서 빨간 열매를 먹고 나서 흥분해서 밤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칼디는 이 신기한 빨간 열매를 승려에게 건너 주었고 늦게까지 수행을 하던 승려들은 이 열매가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슬람 승려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2. 오마르의 전설
13세기경 예맨의 승려 오마르가 모카왕의 병 걸린 왕비를 위해 기도를 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모카 왕에 의해 오마르는 오자브 산속으로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산속을 헤매던 오마르는 산속에서 빨간 열매를 먹던 새를 보게 되었다. 오마르는 이 열매를 끓이던 중 향긋한 냄새를 맡았고 끓은 물을 마시고 난 뒤에 몸에 활력을 얻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오마르는 이후 이 끓인 물을 병자들의 병을 치료하는데 이용하였고 이에 모카왕은 그 업적을 높게 보아 죄를 사면해 주었다는 전설이 기록되어있다.
커피와 카페인에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
1. 성격과 카페인의 상관관계
캐나다 브리티시 오브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이 생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카페인을 주입하자 부지런한 쥐는 최소한의 일로 얻은 보상에 만족하려고 했고, 게으른 쥐는 추가적인 보상을 바라고 더 많은 일을 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또한, 게으른 사람은 카페인을 섭취하면 근로 의욕이 왕성해지는 반면, 행동이 민첩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오히려 근로 의욕을 떨어트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 커피에 예민한 사람에 대한 원인 유전자
커피를 늘 찾는 사람이 있지만, 한 잔만 마셔도 잠 못 이루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5개의 문헌, 4만 7천여 명의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CYP1A2와 AHR이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그러한 유전자가 없는 사람보다 하루 평균 40mg의 카페인을 더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전자가 사람의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과입니다.
커피의 건강과 관련된 효능
1. 암질병 예방
블랙커피에는 암 확률을 낮춰주는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폴리페놀은 신체 활성산소를 억제해 암 질별의 확률을 낮춰주는 역할과 인슐린 저항성을 낮춰주어 역활을 하여 우리 몸을 이롭게 해줍니다. 또한 블랙커피는 여성이 잘 발생하는 유방암 발생률을 낮춰준다고 합니다. 2010년 미국암연구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커피가 성대, 후두 등 목과 머리 부분에 발생하는 암 발병률을 최대 39%까지 낮춰줄 뿐 아니라, 커피를 하루에 4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암 발병률이 3분의 1 이상 줄어든다고 합니다.
2. 다이어트 효과
커피의 카페인은 몸의 에너지 소비를 촉진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커피 한잔은 지방을 분해한 후 이뇨작용을 활발히 하는데 도움을 주어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어 노페물이 몸 밖으로 배출하게 도움을 줍니다. 또한 블랙커피는 100g 기준 6Kcal 밖에 되지 않아 다른 커피와 비교해도 현저히 적은 칼로리로 다이어트 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3. 숙취에 도움을 주는 커피
커피에 카페인은 소변 배출을 증가시켜 몸 안의 알콜 성분을 몸 밖으로 빨리 배출시키는데 도움을 줍니다.
4. 고혈압과 저혈압의 효과
하루 한 두잔의 원두커피는 저혈압과 고혈압환자에게 활력을 줍니다. 나이가 들면 혈관 신축성이 감소하게 되어,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데요. 커피를 적당히 마시면 혈관 신축성이 다시 좋아져서 고혈압에 도움을 주게 됩니다. 또한, 커피의 카페인이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촉진하므로 저혈압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5. 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커피
커피를 마시면 지구력이 좋아져서 지치지 않고 장시간 운동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평소 운동할 때 에너지는 글리코겐으로 충당이 되고, 글리코겐이 없어지면 지방을 끌어다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카페인은 글리코겐보다 먼저 피하지방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경기 중에 카페인 음료를 많이 마시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6. 입냄새 제거, 그 외 악취제거
블랙커피는 구취억제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입 냄새를 없애줍니다. 하지만 우유나 크림이 첨가된 커피에는 구취억제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커피는 다른 악취제거에도 효과가 좋은데요. 원두커피 찌꺼기를 차안, 신발장, 옷장, 재떨이 등에 담아 놓으면 공기 중의 나쁜 냄새가 제거되어, 향긋한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7.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
커피를 하루 2~4잔 정도 마시면 알츠하이머(치매) 발생 확률을 27% 낮출 수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이 65세 이상 남녀 4,800여 명을 대상으로 14년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커피를 일주일에 5회 이상 마실 경우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20% 늦추어 졌다고 합니다.
8. 졸음 방지 효과
커피에는 각성상태를 지속시켜주는 Cyeling ANP의 분해를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졸음 방지에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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