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고전음악의 이해 | 바로크음악 - 헨델

곰고로곰 2021. 7. 14.

 

 

 

헨델 (Handel. Georg friedrich, 1685. 2. 23 - 1759. 4. 14 / 영국)

오라토리오메시아로 널리 알려진 헨델은 바하와 같은 시대에 나서 그 때까지의 음악의 모든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새로운 음악 세계로 비약시켰다. 바하의 음악이 이지적이며 대위법적이고 교회와 궁정을 중심한 경건한 음악이라 한다면 헨델의 음악은 감정적이고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여 세속과 대중을 상대로 웅장하고 상쾌한 음악을 창조했다.

 

 

헨델은 참으로 백절불굴의 투지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며 강하나 인정미가 넘치는 인간이었다. 그의 음악은 대중을 상대로 썼으며 극적이고, 웅대하고, 명랑하고, 활달하여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것은 그 인격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그는 21세 때 이탈리아 음악을 꿈꾸면서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대망을 품고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 신진 작곡가로 활약하면서 건반악기의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노버 궁정악장의 자리를 차지했고 1710, 영국을 방문한 이래 영국에 머무르면서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전도가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악파인 보논치니 670-1747)와는 음악상의 적수였다. 이들의 경쟁과 헨델을 질투하는 음오 때문에 수차의 파산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했다. 아뭏은 그는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작품을 썼으며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했다.

 

한때 비운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아일랜드 총독의 더블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았다. 그 곳에서 필생의 대작인 메시아24일이란 단기간에 탈고되어 1742412일 더블린에서 초연하여 절찬을 받았다. 메시아의 초연후 8년째인 그가 65세 되던 해에는 완전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의 생존시의 메시아공연만 해도 34회나 되었다고 한다. 헨델은 영국의 국가적인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아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의 작품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고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이다. 그는 가난한 음악가 구제회에 1000파운드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베코베의 말과 같이 그는 공전의 대 음악가였다. 

 

왕궁의 불꽃놀이

이 곡은 1749년 봄, 영국와 프랑스와의 전란이 아텐에서 조정된 것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다. 이 야외 축전 음악은 1749427일 런던 그린 파크에서 열린 축하 불꽃 놀이에서 초연되었다. '수상음악'과 함께 헨델의 가장 저명한 관현악 작품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아일랜드의 명 지휘자 해밀턴 하아디의 편곡으로 된 것을 많이 연주한다.

 

4곡의 모음곡으로 되어 있는 '왕궁의 불꽃놀이'는 불꽃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과 그 사이에 연주된 작은 춤곡조의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1( 서곡 ) D장조 4/4 박자. 웅대하고 장려한 서곡은 우선 팀파니의 트레몰로로 개시된다. 이어서 관악기에 의한 느릿한 선율이 나타나, 현악기에 이끌려 뇌성처럼 울리는 팀파니를 거느리고 관현악이 서로 주고받으며 발전해 간다. 빠른 주부로 들어가면 즐거운 듯한 팀파니를 거느린 관현악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관악기와 어울리면서 헨델풍의 대범함과 줄거움을 과시하면서 화려하게 곡이 끝난다.

 

2곡 알라 시칠리아나(Siciliana)의 느리고 엄숙한 무곡, 그 후 빠른 환희의 음악이 나타난다. 3곡 부레 F장조 4/4박자. 템포가 빠른 프랑스의 무곡,4곡 메뉴에트 D장조 3/4박자이다. 초연 당시 야외에서 연주될 것이었으므로 오보에 24,바순12,호른 9, 트럼펫9, 팀파니 3등 큰 규모의 관악기만으로 편성되었다.

 

수상 음악

수상음악은 헨델(1685~1759)이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인데, 1717617일에 당시의 국왕 죠지 1세의 왕실의 템즈강 위에서 파티의 흥을 돋구는 음악으로 연주되었으며, 그후에도 같은 기회에 중복하여 사용된 작품이다. 전곡은 각각 장대한 프랑스 서곡의 시작, 몇 개의 기지에 찬 춤곡이 나열된 두 개의 모음곡(F장조 및 D/G장조의 모음곡)으로 나뉘어지는데, 알라 혼파이프는 제 2모음곡에서 서곡에 이어 연주되는 악장이다.

 

짧으면서도 명랑한 20곡으로 구성된 이 곡은 모음곡의 형식의 커다란 세레나데이며, 야외 음악으로서는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과 더불어 헨델의 걸작으로 꼽히며 널리 연주되고 있다. 또한 이 곡은 오늘날 와서 하아티경이 편곡한 6곡짜리 버전으로 많이 연주된다. 악기의 편성이나 곡의 배열이나 자유롭게 이루어진 내용 모두 근대 교향 관현악단에도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평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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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 메시아

모든 음악 가운데 가장 감격스러운 음악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메시아'는 헨델이 57세가 되던 해(1742) 412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서 초연되었다. 메시아란 말은 구세주라는 뜻이나 본래는 기름을 부은 자란 뜻인데, 그것이 다시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자 혹은 괴로운 자를 해방하는 자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더블린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그 공연에서 헨델 자신도 상당한 수익을 얻기는 했으나, 그 음악회가 애초부터 자선음악회였던 만큼 그 수익의 대부분은 자선사업의 기금으로 쓰였다.

 

'메시아'가 종교음악임에는 틀림없지만 헨델의 오라토리오가 거의 다 그렇듯이 '메시아'또한 교회를 위한 교회음악이라기 보다는 극장에서 상연할 목적으로 작곡된 연주회용 작품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기독교 신자거나 비신자거나를 막론하고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가장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종교 음악이라는 한계를 아득히 벗어나 인류 공유의 위대한 음악적 유산으로 승화되고 있다.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광명과 영광 그리고 열광을 되찾았던 것일까? 그것은 헨델 자신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혹독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곡이 작곡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풍의 오페라에 실증을 느끼고 새로운 음악양식을 갈구하던 영국의 청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소외당하고, 한때는 온 영국을 지배했던 헨델도 이제는 음악회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영어의 대사를 사용한 오라토리오를 몇 곡 작곡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누렸던 왕년의 명성을 하루 아침에 그에게 되안겨 주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빚은 더욱 가중되었고 날이 갈수록 더욱 혹독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및 정신적인 불안으로 마침내 그는 갖가지 병을 얻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건강상태가 어느 정도로 악화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기거가 부자유스러운 정도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던 듯 하다.

 

이러한 역경속에서 그는 더블린의 자선 음악단체인 필하모니아협회(Philharmonic Society)로 부터 의뢰를 받고 '메시아'의 작곡에 착수했다. 헨델은 언제나 자선단체에 협력해 왔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조차 그는 자선 사업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털어주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을 작곡한 뒤 그 초연을 위해 아일랜드로 여행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메시아'의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메시아의 대사는 거의가 구약성서에서 추린 것이지만 그것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명확치 않고, 다만 그 대사를 헨델에게 전해준 사람이 제넨즈(Charles Jenens)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물론 제넨즈는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우겼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대로 믿고 있지만, 제넨즈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그 선택이나 배열이 너무나 잘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평이다.

 

부유해서 별로 하는 일없이 문학에 골몰하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문학의 천재이자 진정한 이해자라고 우쭐거리고 있었던 제넨즈라는 자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개작하는 등 어쭙지 않은 짓을 하기 일쑤였는데, 말하자면 사소한 금전으로 과대망상증을 사들여 착각속에서 만족을 얻고 있었던 딜레탄트였다. 동시대의 석학 존슨(Sanuel johnson)은 그에 대해, "그는 자신에 도취되어 마침내 머리가 돌아버린 천치여서, 그의 머리속에 가득찬 것은 허영심 이 외에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를 성스러운 존재라 착각하고 있는 그는 거리에 나갈 때면 속된 사람들의 입김이 행여나 그의 옥체에 스며들지 않도록 향수를 뿌린 솜으로 코를 막고 다닌다는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어쨌든 '메시아'의 대사가 하이든의 '천지창조'와는 비길 수도 없을 만큼 훌륭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헨델의 영감을 크게 자극했으리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메시아'의 작곡은 1741822일에 시작되어 24일만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대작이 고작 24일만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저 경탄하는 대신에 그것을 작곡하는데 헨델이 얼마나 연중했었던가를 좀더 생생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헨델은 24일 동안 거의 침식조차 잊은채 마치 열에 뜬 사람처럼 열광된 상태에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실의와 좌절이 거듭된 끝에 창조된 그 드높은 세계, 일찍이 어떤 음악도 성취하지 못했던 영광의 구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나 견줄만한 그 웅장한 스케일과 구도..곡 하나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환희의 눈물이 양 볼을 가득 적셔 흘렀고, 다시금 열에 떠서 다음 곡을 스케치했다는 그 때의 정황을 굳이 되살려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슴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감격과 열광을 느끼지 않고서는 이 곡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웅장한 스케일을 운운하는 것으로만 '메시아'를 이야기 할 수는 결코 없다.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바이우스

이 오라토리오는 메시아의 다음에 가는 걸작이다. 헨델은 32곡의 오라토리오를 썼는데, 이 곡은 1746년에 작곡했다. 그 당시 찰수 에드워드가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을 일으켜 런던을 공격하려는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 1746년 카르텐 무아의 싸움에서 패배당했다.

 

이곡은 스코틀랜드 반란군의 참패와 이를 정복시킨 칸발란드공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하여 토마스 모렐(Thomas Morell)박사의 시를 대본으로 작곡되었다. 그것은 한숨 쉬며 애원하는 유대 민족을 구해낸 유다스 마카바이우스의 출현과 그 승리를 다룬 것이다.

 

헨델은 이 작품으로 영구의 국가적인 음악가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작품은 3부로 되었으며 배역은 주인공 테너 유다스 마카바이우스와 그의 동생인 베이스시몬, 그리고 이스라엘 사신 등이다. 1부 유대 민족의 비애와 유다스의 출현, 유다스의 아버지의 죽음을 조상하는 당면, 이스라엘 남녀의 합창. 2부 유다스의 승리와 새 전투에의 결의, 승리의 기쁨, 적의 내습, 신에게 도움을 비는 기도 3부 승리의 찬가와 평화의 기쁜, 최후의 승리와 찬가와 감사, 신에의 찬미, 마지막에 할렐루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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