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서양음악사 | 고대와 중세음악

곰고로곰 2021. 6. 26.

 

 

고대 음악(BC.45천 년 무렵)

음악사에서 고대는 선사 시대로부터 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까지를 일컫는다. 이 시대의 음악에 관한 자료는 매우 적지만, 옛 문헌과 동굴. 무덤. 사원 등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에서 당시에도 음악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당시 음악으로는 시편에 붙여진 단성의 노래가 많이 불리었고, '리라' '아울로스' 등의 악기가 사용 되었으며, 피타고라스에 의해 음악 이론이 발달되기도 하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등에서 이미 상당히 고도로 발달한 음악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그림이나 조각기록전승(傳承)악기 등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단지 음악작품 그 자체는 한 곡도 남아 있지 않아 그 음악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추정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대 유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성서에도 많은 기록이 있어 유대교의 제사와 음악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구약성서의 시편(詩篇)도 성가의 가사(歌詞)로서 본래는 일정한 선율에 따라서 노래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유대교도들 사이에는 각기 독자적인 시편창법(詩篇唱法)성서낭창법(聖書朗唱法)성가 등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고대적인 요소를 남기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어 있다. 또한 그와 그리스도교 성가와의 관련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음악은 사회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찬가무도가결혼가조가(弔歌) 등 여러 종류의 가곡이 쓰여졌다.

 

호메로스, 사포, 아나크레온 등의 시()도 본래는 낭창을 위한 가사였으며,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고대극도 무대 출연자나 코러스(chorus)에 의한 낭창, 기악연주자에 의한 반주 등에 의해서 연주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7세기 초 근대 오페라의 탄생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또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등은 각기 음악의 본질윤리성물리성에 대해 논하여 음조직선법(旋法)리듬 등에 관한 그리스의 독특한 음악이론을 확립해 그 후의 유럽 음악이론의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다.

 

1. 고대 그리스 음악

고대 그리스는 고대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가장 문화적인 민족을 가진 나라여서, 기원전 64세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의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민 생활 속에서 시와 연극이 발달하였으며, 그 학문과 예술이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포도 재배의 주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로써 흥분과 도취의 음악 상태를 상징시켰고 태양신인 아폴로(Apollo)로써 지성과 질서를 상징시켰는데, 그것은 각각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과 이지적인 면에 호소하는 음악의 신이 되었다. 이러한 것에 해당하는 악기로서 관악기인 아울로스(aulos)를 감성적인 것으로, 현악기인 키타라(kithata)를 이지적인 것으로 대비시킨 것은 이미 음악 인식의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에서는 신화 시대부터 음악이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으며, 그 음악은 서양 음악의 한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2. 고대 이집트의 음악

고대 문명의 영화를 누려온 고대 동방제국의 유물이나 문헌들은 음악 문화의 번영을 증명하고 있다. 고대 사회의 종교적 신화나 전설에서는 음악이 신묘한 힘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인간은 우주론적이고 자연 철학적인 인식에 눈길을 돌리면서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간의 길이고, 또한 국가 번영의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음악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종교적 쟁화나 교육적 수단이 되었으며, 그 발전은 모두 종교적 음악에서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음악으로 흘렀다. 이러한 시대의 음악 구조는 기본적으로는 단성이지만, 동일 선율을 많은 인원수로 동시에 연주함으로써 어떤 성부가 본래 선율에서 잠시 벗어나는 헤테로포니(heterophony)의 이음성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발전된 단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음표나 기보, 어느 정도의 의식적인 작곡 행위가 성립될 수 있었다.

 

3. 고대 로마 음악

고대 로마의 음악은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그리스 음악의 계승에 그치고 말았다. 로마인들은 매우 실질적인 사람들이어서 음악을 축제나 행진에만 이용함으로서 그리스 음악이 지닌 예술성을 세속화오락화 시켰다. 다만 악기의 발달이 이루어져, 아울로스와 같은 티비아(tibia), 트럼펫과 같은 리투스(lituus), 혼과 같은 부키나(buccina), 그리고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발명된 원형 극장용 수압 오르간(hydraulus) 등의 많은 악기가 있었다.

 

중세의 음악(200~1450)

중세 유럽의 음악사는 그리스도 교의 전례(典禮)에 연결되었던 성가의 성립에서 비롯된다. 초기 그리스도교 성가는 기본적으로는 고대 유대교성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거기에 여러 지방적 요소가 가해져 여러 동방교회성가 및 서방교회성가가 성립되었다.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서유럽세계에 세력을 뻗침과 더불어 로마성가가 큰 발전을 보여 그 후의 유럽음악의 기조(基調)가 되었다. 이 성가의 성립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룩한 업적이 컸다고 전하여 그레고리오 성가라고도 불리며, 오늘날에도 로마교회의 가장 정통적인 전례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세속음악분야에서도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트루바두르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젱거 등의 음유시인(吟遊詩人)에 의한 속어(俗語)의 기사가곡(騎士歌曲)이 번성하였다.

 

이들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포함해서 원칙적으로는 교회선법(敎會旋法)에 의한 단성부 음악이었으나, 9세기경부터 다성부의 음악도 나타나게 되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다성음악의 실례는 9세기경의 음악이론서 무시카엔킬리아디스에 기록되어 있는 단순한 형태의 오르가눔이나, 실제로는 더욱 복잡한 형태의 것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유럽의 다성음악이 이 이론서에 의해서 창시된 것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그 이전부터 다성음악은 민속적즉흥적인 형태로 연주되었을 것이다. 초기 다성음악의 자료는 극히 적고 기보(記譜)도 해독(解讀)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면 프랑스의 성마르시알 수도원이나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중심으로 발전을 이루고 특히 12세기 말에서 13세기에 걸쳐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레오니누스페로티누스 등의 2() 내지 4성의 오르가눔이 나타났다. 또한 클라우술라모테트콘둑투스 등의 악곡도 나타나 중세 유럽음악의 정점(頂點)이라고도 할 발전을 보였다(노트르담악파). 14세기에 들자 신생(新生)에의 시대경향을 반영해 사랑자연미 등을 노래한 세속작품의 수가 증대하고 2박자가 도입되었으며 리듬도 다양해져 아르스 노바(신예술)의 음악이 이루어졌다.

 

특히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133077)의 음악에서는 13세기 아르스 안티콰(고예술) 음악의 세속화와 새로운 표현에의 지향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이탈리아의 자코포 다 보로냐(14세기 중반), F. 란디니(132597) 등의 세속작품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고, 영국에서도 35도 등을 중용하는 독특한 다성음악 기법에다 종래에는 없던 참신함을 보였다. 그리고 15세기 초의 J. 던스터블, L. 파우어 등의 영국음악은 그 후의 대륙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욤 드 마쇼

 

1. 그레고리오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는 순수한 음악임과 동시에 예배에 속하는 기능 음악이다. 이 시대의 예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이 형식이 있다. 그것은 성무일과(Office)와 미사(Mass)인데 성무일과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예식으로 모두 8개가 있다. 성무일과를 위한 그레고리오 성가는 안티포날레(Antiphonale) 또는 안티포날(Antipho nal) 이라고 하는 의전 책에 수록되어 있다. 미사는 성무일과 보다는 늦게 발달했지만 카톨릭 교회의 기본적인 예배로 'MASS'라는 말은 '가시오 집회는 끝났소(Ite missa est)'라는 의식을 끝내는 구절에서 유래 되었다.

 

미사에는 평소에 일반적으로 지켜지는 일상부 미사와 특별한 절기에 지켜지는 특별 미사가 있는데, 일상부 미사는 보통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로 이루어진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악적 특징은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선율로 이루어진 단선율 음악이다. 그리고 가사면에서 본다면 모두 라틴어로 쓰여져 있지만, 성서적 가사를 갖는 것과 비 성서적 가사를 갖는 것으로 구분되며, 선율의 윤곽은 가사의 강세형을 반영하지만 선율을 특별한 감정 또는 서술의 효과를 적용시키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정확한 박자와 마디의 표시가 없어서 길게 낭송하는 듯이 보인다. 음계는 헥사코드(hexachord)라고 불리우는 6음 음계 체계로 이루어졌으며, 음의 기록은 네우마(neuma)라고 불리우는 기호들을 사용하여 표시하였는데, 보다 명확한 기보를 위해서 f음을 대표하는 붉은 선을 그어 그 아래위에 기호들을 위치시켰고 조금 지나서 c'음을 표시 하기위한 노란선이 그어졌고, 11세기에 이르러 귀도 다레초에 의하여 4선 보표가 사용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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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성음악의 발달

다성음악의 발달은 오르가눔(Oraganum)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서양음악 구조의 두 가지 큰 법칙은 화성법과 대위법인데, 9세기 중엽 서양음악에서 최초의 대위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며, 대위법의 기초가 바로 오르가놈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오르가눔은 기존 선율에 대해 5도위나 4도 아래로 중복되거나 옥타브로 한 번더 중복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을 평행오르가눔이라고 불렀다(이런 현상을 기존 선율의 종적 확장이라고 한다.) 

 

그 후 11세기경 기존 선율은 저성부에 놓이고 대위선율은 상성부에 놓이게되는 자유 오르가눔과 12세기의 화려오르가눔이 탄생하게 된다. 이와관련된 악파가 생 마르샬(St. Martial)악파이며, 전기 고딕으로 분류되기도한다, 서양 예술사에 알려진 최초의 위대한 다성음악 작곡가는 12세기 말경 노트르담 교회의 합창단장이었던 레오냉이 있는데, 그는 후에 모테트의 모체 가 되는 디스칸투스 양식으로 된 클라우술라를 도입하였다. 그후 13세기경 중세의 이상적음향(Sound Ideal) 3성부 음악을 이루는데 기여를 한 페로탱이 나타나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노트르담 악파를 형성한다.

 

 

2. 아르스노바

13세기를 안정과 통일의 시대라고 한다면 14세기는 변화와 다양함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후기 고딕시대로 분류되는 14세기에는 이전의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탈피, 인간 이성과 성스러운 계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본주의(Humanism)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후에 르네상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이러한 기운을 안고 14세기 초 프랑스에서 그리고 조금 늦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음악형태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프랑스에서 그리고 조금 늦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음악형태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프랑스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필립 드비트리(PHILLIP PE DE VIRTY/1291 ~ 1361)의 논문 제목을 따서 아르스 노바(Ars nova/신예술)라고 불렀으며 이전시대를 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구예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1300년경에 최초로 신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후 대략 300년의 터울로 신음악이 그것이다. 14세기에는 종교음악 작곡으로부터 세속음악 작곡으로 그 강조점이 크게 변하게 되었으며,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리듬, 그리고 일정한 조의 중심을 향해 진해하는 화성감각이 자라나게 되었다,  5도와 8도가 드물어지는 반면, '고정형식(Formes fixes)'이라고 불리우는 발라드(ballardes), 론도(rondeau), 비를레(virelais)가 발생한다. 이 모든 14세기의 특징을 창출한 가장 유명한 작곡가가 바로 기욤 드마쇼(Guillaume de Machaut)이다. 15세기 초 영국에서도 장조 조성으로 향하려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 시기의 지도적인 작곡가로는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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