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의 DNA분자구조 규명이후 분자수준의 유전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동식물을 대상으로 한 유전학의 연구성과는 인간 의학에 곧장 적용되어왔는데 유전자 검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양수검사를 통해 태아의 유전질환을 검사하는 방법은 1970년대 처음 도입되었으며 오늘날은 배아의 유전자검사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고질적 유전질환을 배아나 태아단계에서 걸러내는 의료적 목적으로 사용되어온 유전자검사는 인간지놈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 비의료적 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놈프로젝트에 의해 10만개에 이르는 인간유전자의 기능이 점차 밝혀지면 유전자검사의 대상은 비의료적 형질(예를 들어 큰 키, 운동 능력 등)을 통제하는 유전자로 쉽게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검사를 통해 특정 배아를 선택한 후 이를 착상하는 소위 '맞춤아기'는 부분적이나마 이미 현실화되었다. 더 나아가 유전자 조작에 의한 수퍼베이비의 탄생도 공상과학의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유전자의 기능파악, 검사, 조작을 통해 유전질환을 차단하거나 혹은 원하는 형질을 강화하는 기술은 오용될 경우 인간의 생식과 관련하여 심각한 사회적 윤리적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진보된 유전학적 지식과 기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우생학은 과거의 우생학과는 적용대상과 그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채 과거의 어두운 역사적 이미지만으로 새로운 내용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될 수 도 있다. 여기에서는 유전자검사, 유전자 치료, 인간 지놈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들 기술의 우생학이 가지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생학의 기원
선택적인 남녀의 결합을 통해 인간종족을 개선하려는 사고는 최소한 플라톤의 "국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우생학의 직접적 기원은 19세기말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우생학(eugenics)이란 용어는 1883년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 (Francis Galton)에 의해 고안되었는데 이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용어로써 "좋은 출생" 혹은 "유전적으로 홀륭함"을 의미한다.
골턴은 생물학적 유전에 통계학적 방법을 적용한 개척자이며 찰스 다윈의 사촌이기도 하다. 멘델의 유전학 논문이 이미 1865년 출판되었지만 주지하다시피 당시 과학자사회에서 무시되었고 그 결과 골턴의 시대에 유전학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선택의 결과로써 종이 진화한다고 가르쳤으며, 가깝게는 인위선택을 통해 육종가들이 동, 식물에서 원하는 형질을 선택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골턴은 인종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 진화의 미래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골턴의 우생학적 사고는 우생학이란 용어가 고안되기 전인 1865년 한 교양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 등장한다. 골턴은 이 글을 확장하여 4년 후 {유전성 천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인명사전을 이용해 법률가, 정치인, 과학자, 예술인 등 당시 사회 저명인사의 가계를 추적 조사한 연구를 소개했다. 골턴은 연구결과 이들 대부분이 혈연관계로 묶여있었다고 주장하며 유전은 신체적인 특성 뿐 만 아니라 개인의 재능과 성격도 결정한다고 결론지었다. 골턴은 이러한 결론을 근거로 우수한 남녀간의 선택적인 결혼을 몇 세대만 수행해도 뛰어난 능력의 인종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우생학을 성취하는 방법은 유전에 대한 생물학 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일반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의 우생학자들은 유전형질에 의해 인간의 특질이 거의 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믿었다. 초기의 우생학은 유전에 대한 생물학 이론의 부재로 더디게 전개되었는데 1900년 멘델 유전학의 재발견으로 우생학은 급진전을 이룬다. 우생학자들은 멘델 유전학을 인간의 유전문제에 적용하였고 이로써 우생학은 과학적인 근거를 갖게되었다고 믿었다. 이들은 유전자가 인간의 신체적 특성을 결정한다고 주장했으며 나아가 행동특성까지도 결정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물학적 믿음을 기반으로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구별하고 이들의 전파를 선별적으로 증감하는 것이 우생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방식이 되었다. 우생학은 미국과 유럽각국으로 퍼져나갔는데 특히 미국과 독일의 경우에는 사회 정치적 이념과 결합하여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전개된다. 특히, 1930년대 나치 치하에서 우생학프로그램은 전성기에 달하며 결국 가스실의 대량학살로 막을 내린다. 이 참극은 우생학을 추악한 단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생학에서 인간유전학으로
미국과 독일의 우생학적 흐름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면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우생학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1930년대 영미의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영국의 J.B.S. 할데인(J.B.S. Haldane),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 랜슬롯 혹벤(Lancelot Hogben) 그리고 미국의 허버트 제닝스(Herbert S. Jennings)가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은 우생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불식하기 위해 무엇보다 우생학으로부터 인종, 계급, 남녀와 관련한 사회적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건강한 우생학은 인간유전학에 과학적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 정부의 강제적 수단에 의해 집단적인 인종개량을 추구했던 우생학에서 개인의 자발적 상담을 통해 출산과 관련한 유전질환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유전상담(genetic counseling)으로의 이행이 이루어 지게된다. 유전질환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오늘날의 인간유전학은 이러한 움직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전상담은 1940년대 영국의 소아병원 (Hospital for Sick Children)과 미국의 미시건대학, 미네소타대학에 전문 클리닉이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 인간유전학과 우생학의 연관은 1948년 창설된 미국의료유전학회의 초기회장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이 미국우생학회의 이사였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1947년 "유전상담"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미네소타대학의 다이트 인간유전학연구소 소장이었던 쉘던 리드(Sheldon Reed)는 "인간유전학 상담은 우생학프로그램을 현대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이다. 우생학이란 용어는 버림받았으며 이제 '인간유전학상담'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했다.
유전검사와 우생학
1960년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세포유전학은 염색체분석기법을 통해 임신 중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는 방법의 기초를 놓았다. 최초의 산전유전자검사법인 양수검사법(amniocentesis)은 1960년대 개발되어 70년대 중반에는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이와 함께 1967년 영국에서 그리고 1973년 미국에서 합법화되기 시작한 임신중절은 산전유전자검사(prenatal genetic screening)에 이은 낙태라고 하는 새로운 유전질환대책을 정착시켰다.
최근 기술의 진보로 배아 단계에서의 유전자검사가 가능해짐에 따라 산전유전자검사는 태아선별법(fetus screening)과 배아선별법(embryo screening)으로 세분화되었다. 태아선별은 예를 들어 양수검사법에 의해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한 후 문제가 발견되었을 경우 태아를 낙태하는 방법이다. 배아선별의 경우 개략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심각한 유전질환의 가능성이 있는 부부가 아기를 낳기 원하는 경우 여성 쪽으로부터 체외수정(IVF)기술을 적용해 여러 개의 난모세포를 추출한다.
여기에 남자의 정자를 수정시켜 체외에서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든다. 이 배아의 유전자를 검사해 정상적인 배아만 여자의 자궁에 착상하여 임신에 이르게 한다. 배아선별법은 태아선별법과 달리 태아를 낙태시켜야하는 부담으로부터 해방되는 장점이 있지만 복잡한 체외수정과 검사에 따르는 번거로움 그리고 고비용이라는 단점이 있다. 배아선별법은 특히 여러 개의 배아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심각한 유전질환을 가진 부부에게 각광받게될 생식보조기술로 보인다.
유전자치료와 우생학
인간의 유전특질에 대한 인위적 개입은 대상 - 체세포유전자 혹은 생식세포유전자 - 과 목적 - 치료 혹은 특질강화 - 에 따라 이들의 조합인 네 가지 경우로 나뉜다. 체세포유전자조작은 치료 혹은 특질을 강화할 목적으로 환자의 결함 체세포유전자를 다른 정상 혹은 우수한 특질의 유전자로 대체하는 것이며 치료효과는 환자의 당대에 국한된다. 생식세포유전자조작은 치료 혹은 특질강화를 목적으로 정자, 난자 혹은 배아 상태에서의 결함 유전자를 정상 혹은 우수한 유전자로 대체하는 것이며 배아가 성인으로 자라 후손을 낳게되면 후대에까지 그 영향이 항구적으로 미친다.
인간유전자 조작의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1962년 "인간과 그의 미래"라는 주제로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CIBA재단 심포지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참여했던 당대의 대표적 생물학자인 J.B.S. 할데인, 줄리안 헉슬리, H.J. 뮐러(H.J. Muller) 등은 인간의 유전특질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우수한 정자의 기증, 우수한 인간의 복제와 아울러 유전자에 대한 직접적 조작을 제시했다. 이 들은 생식세포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체세포의 경우보다 힘들며 치료보다는 특질강화가 더 어려운 작업일 것으로 이미 예견했다. 60년대 말경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유전자조작의 가능성을 보다 현실화 시키게 된다.
체세포유전자치료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치료법이 가질 수 있는 장점과 위험부담, 임상실험에서 대상환자의 자발적 동의의 획득, 비밀의 유지 등 전통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생식세포유전자치료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한데 가장 우려되는 요소는 생식세포유전자조작의 결과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이다. 헌팅튼씨병과 같이 하나의 유전자에 결함이 생길 때 발생하는 질환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전질환이나 특질들은 다수의 유전자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결과된다. 조작된 유전자와 주변 유전자들 간의 복합적 작용이 배아의 장기적인 성장과정에서 어떤 위험요인으로 등장하게 될지 현 단계의 지식수준으로는 예측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학적 불확실성이 허용가능 수준으로 감소하지 않는 한 생식세포유전자치료는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개입이 될 것이다.
"유전자치료가 과연 우생학의 일종인가?" 의료윤리학자 존 해리스(John Harris)는 최근 한 논문에서 직설적으로 묻고있다. 해리스의 입장은 다소 극단적인데 체세포나 생식세포 유전자 치료는 과학적 불확실성만 제거된다면 양자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다. 치료적 유전자 조작이나 특질강화를 목적으로 한(우생학적) 유전자조작 역시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본다. 치료적인 조작이나 우생학적인 조작 모두 개인의 생존과 건강을 보호(protection)하는 방법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상유전자의 종류(체세포 혹은 생식세포 유전자)나 조작의 목적(치료 혹은 특질강화)에 관계없이 이러한 조작은 모두 개인의 생존과 보호라는 보편적 가치아래 용인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윤리학자 니콜라스 아가(Nicholas Agar)도 유전자 조작을 통한 특질강화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가는 인간유전자조작문제에 대해 기존의 이분법적 윤리적 접근 - 치료적 조작대 우생학적 조작 -은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특질을 개선하는 어떠한 유전자조작도 일률적으로 거부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맞춤 아기: 인간유전자를 조작함에 있어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방식들"이란 논문에서 아가는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유전자특질 강화도 있다고 주장한다.
아가는 개체의 발전에 환경과 유전자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하고 유전자개량은 환경개량과 동일선상에서 취급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자녀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environmental input)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되듯 부모가 유전자조작을 통해 자녀의 선천적 능력의 용량(capacity)을 증강하는 일에 개입하는 행위도(genetic input) 윤리적으로 허용가능 하다는 것이다.
인간지놈프로젝트와 우생학
미국의 주도하에 전세계적인 규모로 수행되고있는 인간지놈프로젝트는 최근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마무리지었고 이제 이를 기반으로 각 유전자의 기능규명에 들어갔다. 이로부터 쏟아질 정보는 기존의 인간유전학의 주된 연구 대상이었던 단일 유전자의 결함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들 - 낭성섬유종(cystic fibrosis)이나 헌팅튼씨병 등 - 뿐만 아니라 다수 유전자의 복합적 작용에 의한 것으로 믿어지는 여러 심각한 질환들 - 여러 종류의 암,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 등 -의 발병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하는데도 획기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간유전학과 관련기술의 발달은 어떠한 아기를 가질 것인가를 부모가 결정하는 소위 "홈메이드 우생학"을 가능하게 하였다. 현 단계의 기술수준은 몇몇 유전질환의 검사를 통해 이러한 질병을 갖지 않는 아기를 출산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인간지놈프로젝트로부터 나올 유전정보와 관련기술의 진전은 머지 않은 장래에 지력, 체력, 외모 면에서 평균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소위 슈퍼베이비의 출산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성별선택이나 키를 크게 하는 성장호르몬에 보였던 부모들의 관심에 비추어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면 곧장 상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지놈프로젝트를 통해 유전질환과 유전자와의 상관관계에 관한 정보가 양산되면 먼저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유전자검사가 가능해질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검사에 이은 적절한 치료방법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천 종의 유전질환이 발견되었지만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현 기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헌팅튼씨병 같은 경우 진단은 발병 전 수년 혹은 수십년 전에 가능한데 유전자검사결과 양성 판결을 받은 환자는 이기간 동안 실질적인 사형선고를 받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미국의 경우 125,000명의 잠재적 헌팅턴씨병 환자들 중 200명 정도만이 검사를 자청했다.
암의 경우는 이와는 상황이 조금 다른데 암을 유발시키는 다양한 암유전자(oncogene)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고 유전자검사결과 특정 암에 대해 양성반응을 보이는 그룹에게는 조기발견을 위한 정기 검사와 식생활변화 등 예방적 대안이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유전자검사를 원할 것이며 암유전자 검사법은 지놈프로젝트가 창출할 여러 분야 중 가장 치열한 상업화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
우생학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강제 불임시술이나 낙태 등의 방법을 통한 사회운동을 의미하기도하고, 인간유전학을 응용한 과학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인간의 유전학적 개선을 추구하는 원리나 이상 등을 나타내는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오늘날 의료유전학자들은 자신들의 분야와 추악한 우생학을 구분하기 위해 우생학을 좁게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를 우생학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1950, 60 년대 의료유전학자들은 우생학을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했다. 자신들의 "좋은 우생학"과 과거 미국과 나치 독일의 "나쁜 우생학"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우생학은 이같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지금도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유전학에 대한 우생학 논란에서 사용되고 있는 우생학개념은 과거의 우생학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우선 과거 우생학은 사회 전체인구의 유전특질 개선을 목표로 했던 반면, 새로운 우생학은 개인의 유전질환 치료나 특질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과거의 우생학에서는 특정 유전자를 퍼뜨릴 부모가 선택의 대상이었지만 새로운 우생학에서는 새로 태어날 자녀가 선택의 대상이 된다. 과거의 우생학에서는 정부가 강제적 수단으로 이들 부모의 생식을 촉진 혹은 제한했던 반면 새로운 우생학은 개개 가정의 자발적 결정에 의해 태아를 낙태, 유전자 치료, 혹은 특질 강화하게 된다. 새로운 우생학은 목적, 대상, 수단에 있어 과거의 우생학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과거 우생학의 어두운 역사는 우생학이 특정 인종, 계층의 사회적 이해를 대변하고 이들의 사회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데서 비롯되었다. 나치의 만행이후 인종, 계층간의 갈등을 우생학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그 결과 새로운 우생학은 대상, 목표, 수단에서 과거의 우생학과는 매우 다른 접근을 취하게 되었다.
생식과 관련한 결정에서 정부의 강제적 개입이 개인의 자율적 선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이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식문제에서 정치의 역할이 줄어든 만큼 그 부분을 시장이 대체해 왔으며 정부의 강제력을 대신해 시장의 논리가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게 된 것이다. 이는 결국 한 형태의 사회적 힘이 다른 형태의 사회적 힘에 의해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지놈프로젝트의 결실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될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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