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이야기

세계문화이야기 | 중국 주거문화 역사

곰고로곰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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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고대 상나라부터 근대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왕조를 거치는 동안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며 수천년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역사에 흐름을 따라오는 동안 영토는 계속해서 확장되었고, 많은 이민족과 소수민족이 중국인으로 통합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사람들의 주거환경도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다. 이러한 주거환경은 또한 다양한 민족구성과 넓은 지역차에 의해서도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리, 풍토 및 주택의 다양성

가. 지리와 풍토

중국의 영토는 러시아와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중국이 차지하는 면적이 세계 육지면적의 십오분의 일로써 남북의 위도차이는 39도, 동서의 경도 차이는 60도이다. 중국의 국토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을 특징으로 한다. 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천산(天山)산맥, 곤륜(崑崙)산맥이 있고, 그 동쪽으로 티벳고원, 타림분지, 사천분지, 내몽고고원, 운귀고원등이 있고, 그 동쪽으로 동북, 화북, 화중, 화남 등 넓은 평야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림 1> 중국지형 동․서 단면도

 

따라서 중국은 동서양쪽의 고도차이가 심할 뿐 아니라 지형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이렇듯 중국대륙은 산지, 고원, 구릉, 평원, 분지가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하천이 발달한 동부평야 유역은 예전부터 인구가 밀집한 생활을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은 남북위도의 차이에 따라 기온차도 크고 기후도다르다. 최남방 해남도가 열대기후이며, 위도와 고도에 따라서 아열대성기후, 온대기후, 냉대기후, 건조기후, 고산기후도 보이고 있다. 또한 지역별로 온도차이도 큰데 겨울철에는 남북의 기온차가 50도에 이르지만 여름철에는 10도에 불과하다.

 

나. 주택의 다양성

중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한족과 전국에 산재해 있는 50여 소수민족들은 각각의 경제조건과 생활관습, 그리고 거주하는 지역의 기후, 지형, 건축재료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독자적인 주거문화를 형성했다. 중국주택의 형식적 다양성은 너무나 풍부하여 그 모두를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것은 중국을 이루고 있는 민족적 다양성을 연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각 지역 주민의 사회․문화적 차이 그리고 지역의 자연조건의 차이 등이 주거형식이 다양하게 되는데 상당한 영항을 끼쳤기 때문이다. 중국 주거양식의 다양성은 주택의 공간구성과 건물의 구축방법 및 사용된 재료의 차이에서 주로 파생된다고 할 수 있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돌이나 벽돌을 쌓아서 건물을 구축하는 조적조(組積造) 문화권과 나무를 짜 맞추어 건물을 구축하는 목구조(木構造) 문화권이 혼재한다. 역사의 발전과정에 따라서 이러한 구축법과 공간구성의 특성들이 서로 뒤섞이고 혼재하면서 중국주택의 다양한 양상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주거양식은 상당한 유사성 또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의 주거문화가 중국의 주거환경 전반에 매우 강한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주로 화북지역에 거주하던 한족이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내향적 공간구성과 좌우대칭의 엄격한 축적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족 고유의 주택은 중국 각지의 주거형식을 결정하는 데 하나의 표준으로 작용했으며,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 재료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변화하며 적응했다.

 

 

주거문화 형성에 미친 여러 가지 요인들

가. 전통적 공간개념과 주거공간의 구성

1) 고대철학에 있어서의 공간개념

중국인들이 가진 공간개념은 중국 공간철학의 원리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중국의 고대철학은 중국인의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그들 고유의 생활양식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동시에 중국 고유의 공간개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중국의 공간개념은 우주, 세계, 자연,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추상적인 개념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중국에서의 공간개념은 물질적 존재와 비물질적 존재라는 양자의 관계에서 이해되며, 양자의 상호의존과 변화라는 개념과 관련되어있다. 이러한 관념의 근원은 음양의 원리에 있다.

 

노자는 도가사상을 통해서 음양의 원리에 입각한 중국적 공간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노자의 사상에 따르면 공간은 두 가지의 실체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데, 하나는 무(無)이고 하나는 유(有)이다. 이 두 실체는 시간의 흐름에 통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서로 의존하면서 변환하며, 서로 작용하여 합일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해석했다. 즉, 노자는 유와 무의 상호관계를 강조하고자 하였고, ‘무와 유는 같은 곳에서 나와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노자의 공간개념이자 중국적 공간개념의 기본적 바탕이 된다.

 

공자도 음양의 원리를 받아들여서 이론화하였으며, 공자에게 있어서 도는 중용으로 합축된다. 여기에는 질서와 그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적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공(空)은 색이며 색은 공이다’라는 개념으로 응축된다. 불교에 있어서 공이란 비물질적 자아이며, 색이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물질적 존재를 의미한다. 결국 불교에서 의미하는 공간의 개념 또한 연속성과 변화, 그리고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의 관념을 지닌다는 데서 여타의 중국 고대철학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렇게 고대철학의 공간개념에 대한 유사성은 중국철학의 긴 역사를 통해 상이한 개념들이 서로 통합되고 조정되게 했다. 즉, 여러 개념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통해서 그 요소들은 서로 화합하고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상이성(相異性)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개념에서의 상이성은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이 갖는 대조적인 경향으로 나타난다. 유가사상의 공간개념은 모든 것이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크기, 형태, 그리고 질서를 갖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적절성은 사회적 위계성과 질서감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유가사상에서 파생된 공간개념은 질서와 위계를 강조하고 전후좌우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정연하고 균형잡힌 구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도가사상에서의 공간개념은 자연이 지니는 변화와 자유, 대조와 균형, 개체성과 통일성을 모두 강조하고 이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즉, 유가사상은 규칙과 질서를 강조하고 도가사상은 비정형, 비대칭, 신비성, 곡선적 구성을 강조하여 자연이 갖는 형식을 따르는 것을 이상으로 했다.

 

2) 중국건축의 다섯 가지 공간개념

중국의 건조환경을 형성하는 데 작용한 공간체계는 정형적이고 구성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비정형적이고 자연적인 측면 또한 지니고 있다. 다양한 중국의 공간개념은 다섯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간구성의 내향성과 폐쇄성이다. 중국건축은 ‘공간을 둘러쌈으로써 외부로부터 보호한다’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었다. 이것은 중국건축의 원초적 원리로 중국인의 세계관이 물리적으로 표현된 결과이다. 둘째, 중국 건축은 대부분 축적․위계적 구성을 취한다. 중국의 건축은 축을 중심으로 하는 좌우대칭적인 구성을 취하는 동시에 엄격한 위계에 의해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다는 것이다.

 

이는 천자중심사상과 봉건제도와 가부장제의 질서에서 파생된 것으로 유가사상에 바탕을 둔다. 셋째, 여백과 공허부가 강조된 공간구성을 취한다. 이는 도가사상에서 파생되었다. 넷째, 실체부와 공허부가 적절하게 병립한다. 유와 무, 존재와 비존재가 병립되고 그들의 상호연관성이 건축에서 강조된다. 다섯째, 흐르는 공간이다. 중국건축의 내․외부를 돌아보면 외부의 개방감이 어느덧 내부의 폐쇄감으로 전환되고 동시에 내부에서는 또다시 외부의 개방감으로 연결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나. 민간신앙과 주거공간의 구성

중국건축은 안으로는 보호, 밖을 향해서는 강한 배타성을 갖는 구성을 취한다. 이러한 폐쇄적 공간구성은 대중종교의 영향또한 큰데, 둘러싸인 내부가 인간이나 신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 외부는 영령들에게 남겨진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경계를 통해 악령을 막을 수 있으며, 인간은 이 경계 내에서 신의 보호를 받으며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잇다고 믿었다. 중국인은 악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조벽1)과 영벽2), 태산석을 설치했으며, 팔괘도,동물상, 장수의 상을 그리기도 하였다.

 1) 속된 세계로부터 내부의 복을 지킨다는 상직적인 의미의 담장
 2) 주택의 입구 바로 뒤에 있는 벽으로 악귀는 쫓고 복은 불어들인다는 의미의 담장

 

다. 풍수사상과 주거공간의 구성

음양오행의 이론에서 출발한 풍수의 개념은 도시의 건설에서부터 소규모의 주택에 이르기까지 그 입지와 공간구성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풍수이론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용되기 보다는 주로 상류계층이나 일반서민들에 의해서 사용된 대중이론이었다. 풍수의 원리는 기의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결국 자연과 인공물과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여 환경적인 조화를 이룬다는, 자연환경의 파괴를 최소화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혜택을 자연으로부터 얻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리하여 중국건축의 공간구조는 풍수의 이상적인 지리적 형상과 같은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측면은 사합원의 공간구조는 통해 명확하게 파악된다.

 

라. 가족제도와 주거공간의 구성

중국주택의 공간구성에 반영된 가족주의는 가족의 규모,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막론하고 하나의 사회적 규범이었다. 중국에서는 가족구성원이 주택의 공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공통된 원칙이 있는데 첫째, 건물의 중앙에 있는 공간이 측면에 있는 공간보다 항상 우위를 점한다. 둘째, 주택에서는 축을 따라 전면에서부터 후면을 향해 위계적 질서체계가 설정되어 있었다. 즉, 후면으로 갈수록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계층적으로 차별화한 공간은 각각의 고유한 성격에 따라서 그 사용방식이 상당히 엄격하게 구별되었다. 그리고 중국주택의 위계적 구성은 공간의 건축적 처리(중요할수록 높아짐), 재료의 사용(중요할수록 고급재료 사용), 건물의 장식(정면을 향해서 장식 배치)에도 적용되었다.

 

 

주거문화의 역사

가. 신석기 시대의 주거와 주거지

한족의 문화는 기후가 온난한 황화유역에서 싹텄다. 신석기 후기에 이르러황하유역에 거주하던 한족은 농업과 목축을 기반으로 하는 씨족사회로 접어들었으며 문화면에서는 앙소문화와 용산문화, 두개의 계통으로 발전했다. 신석기 시대 후기 한족의 주거지는 집락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주거의 형식은 크게 세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대혈식(袋穴式) 수혈(竪穴) 주거, 천혈식(淺穴式) 수혈 주거, 그리고 지상의 목조 주택이다.

 

<그림 2> 신석기 반파유적

 

황하유역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 수형주거의 가장 초기적인 형식은 지면으로부터 깊은 구멍을 파서 만든 것이고, 이보다 좀더 발전된 형식이 천혈식 수혈 주거이다. 즉, 신석기시대 황하 유역 주거의 발전은 자루형 수혈 주거에서 천혈식 수혈 주거로의 전이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안의 ‘반파(半破) 유적지’를 통해서 살펴보면 주거 유적의 여러 가지 양상을 통해 반혈거 주거에서 지상의 목조 주거에 이르는 주거형식 변화의 여러단계를 살펴 볼 수 있다. 즉, 수혈의 깊이가 점점 얕아지는 동시에 지상 주택의 경향을 좀더 강하게 띠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변이과정중 가장 발전된 것은 주택 내부에 공간적인 구획이 행해진 사례이다. 이러한 변이점은 단일공간 안에서 생활하던 이전의 주거방식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 있어서의 상당한 발전을 의미한다.

 

나. 은(殷), 주(周) 및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주거문화

목조건축은 신석기시대 후기에 이미 초보적인 수준을 취하고 있었으나 청동기시대에 들어가면서 한단계 발전한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은왕조 일반계층의 주거는 전반적으로 목조 건축을 취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목조건축의 양식은 반파의 목조건축과 대체로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구조가 복잡한 수혈식 주거를 사용하다가 서서히 목조 주거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 기단을 사용한 위계적 구성, 좌우대칭적 구성, 공간을 둘러싸는 포위형 구성 등, 중국건축의 기본적인 구성방법이 이때부터 등장한다. 또, 남북방향의 축을 중심으로 마당을 둘러싸는 건물의 구성방법도 이때 나온다.

 

좌우대칭의 축적․내향적 건축으로 특징지어지는 중국건축의 기본적인 구성방식이 뚜렷하게 자리잡은 것은 주대부터이다. 그리고 주례의 ‘고공기‘3)에 의하면 당시 이미 건축공사 담당관리가 있었으며, 건축관련업무가 세심하게 관리되었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러 남북 세로방향의 장방형 구성, 독립된 여러채의 건물을 종합하여 전체를 만드는 구성, 명확한 중심축을 가지는 구성, 가장 중요한 건물인 당옥은 횡방향으로 자리하고, 그 중앙을 축이 관통하는 구성, 좌우에 상방이 위치하여 중앙을 향하는 구성, 실내외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중점을 이루는 구성, 모든 공간을 회랑으로 연결하는 구성 등, 중국 건축구성의 기본적인 원리가 대부분 확립되었다.

 3) 삼례(주례, 의례, 예기)중 주례, 주례중 ‘동관 고동기‘. 건축과 도시의 구성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

 

다. 한(漢)의 주거문화

한대에는 건축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규모가 큰 건물들이 다양하게 건축되었고, 건축양식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성숙되었다. 그리고 목구조를 위조로 하는 중국 고유의 구축법이 이때 이르러 대부분 완성되었다. 또한, 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정과 다층형의 누각이 완성된 모습으로 정착되었으며, 건축의 구조와 형태는 기단, 본채, 지붕이라는 세 부분을 명확하게 갖추었다. 주택은 삼합원과 사합원 형식의 주택이 한족 주거의 원형으로 정착된다. 결국, 은․주시대에 벽형, 내정형이라는 고유한 형식을 정착시켰고, 한대에 이르러 사합원이라는 정형에 도달했으며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었다. 동시에 한대에 있어서는 목조, 토벽, 증정, 기단, 남편, 증축선이라는 중국건축을 구성하는 이념과 기법이 모두 정착되었다.

 

<그림 3> 한대(漢代)의 주택

 

라. 삼국(三國), 양진(兩晉),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및 수(隋), 당(唐)의 주거문화

삼국, 양진, 남북조시대에 주거양식은 명확한 사합원 구성을 취한다. 즉, 한대에서 정착된 사합원이 이 당시에 이미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 양진, 남북조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전쟁이 빈번한 때였으나, 사대부들에 의해서 대규모 저택이나 원림이 지속적으로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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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의 초기에는 대규모의 도성이 건설되었다. 당대에 장안성이라 불리는 이 도시는 정연한 계획에 의해 궁성, 관청, 시장, 주거지가 격자형의 가로망으로 질서있게 배치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훌륭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수양제때는 만리장성의 증축, 경항 대운하 건설, 동도(東都)를 건설하는 등 대규모 토목공사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림 4> 당대(唐代) 상류층 삼채 주택

 

당(唐)대의 주택은 삼합원과 사합원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모두 간소하지만 명확한 증축선과 좌우대칭의 배치형식을 갖고 있는데 오늘날 중국의 많은 농촌 주택들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당대에는 원림건축이 매우 발전했는데, 이런 원림의 건설은 당시 착취계급의 부패와 향락적인 생활의 일단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 예술의 보급과 향상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대에는 부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귀족과 대지주들이 경쟁적으로 대저택을 호화롭게 건설하는 폐단이 생겼고, 이를 통제하는 건축규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를 볼때 당시 주택의 규모와 형식은 정치적․경제적 지위에 따라서 매우 많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 송(宋),원(元)의 주거문화

송대에는 상업도시문화가 크게 발전한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저택의 건설이 많았는데 송대의 저택은 전당후침(前堂後寢)4)의 원리가 이미 정착되었다. 그리고 형식은 사합원과 매우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송대에는 원림건축이 매우 발전한다. 이 시대의 정원은 다른 시대에 비해서 그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이 많았고, 남송때에 와서 더욱 발전한다. 이 시대 원림건축의 특징은 인공산을 만드는 등, 인위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이다.

 

<그림 5> 송대 원림

 

송의 멸망후, 원(元)이 중국을 지배한 이후 정치적, 경제적 탄압으로 건축예술은 상당부분 손상을 입는다. 그리고 농촌산림의 파괴로 원래 목조를 중심으로 한 건축의 성격도 벽돌을 이용한 조적조 건축의 발전이 두드러 진다.

4) 전면에는 집무와 접객 등으로 사용되는 공적공간이 있고, 후면에는 가족의 취침과 휴양을 위한 사적 공간이 있는 공간 구성

 

바. 명(明),청(淸)의 주거문화

원대를 거치면서 중국은 대제국을 성장하고 명과 청을 거치면서 주변의 다양한 외래민족들이 중국에 흡수되면서 문화적으로도 융화되고, 영토도 오늘날과 같은 양상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명, 청대의 주거양식은 그 이전 세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양상을 띤다. 명대 중기에는 양자강 하류와 운하 연안에 많은 도시가 생기고 이곳에 상업이 번성하면서 여기저기에 부호의 저택들이 많이 건설되는데 이런 양상은 청대까지 이어진다. 또 강남일대의 원림 건축은 청대에 와서 그 발전의 정점에 달하게 된다. 그리고, 명․청대에 정점에 달했던 봉건적인 예교와 가부장제도는 주거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림 6> 사합원

 

각 가족을 단위로 복합적인 건축군을 형성했으며 대저택의 대부분은 조상을 모시는 조당을 건축했다. 공간사용에 있어서도 장유유서와 남여의 구분이 명확, 분명해졌다. 또, 사회적으로 풍수사상이 유행하여 주택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청대에 있어서의 큰 변화는 여러 소수민족이 중국의 영토에 들어오면서 주거형식이 다양화한 것도 있지만 한족의 주거양식에 여러변화가 생긴다. 목조가 주류를 이루던 한족의 주거양식이 동굴식 또는 토조와 목조의 혼합구조 등 새로운 구축방식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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