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이야기

차(Tea) 이야기 | 차(Tea) 문화

곰고로곰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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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기원

중국은 차의 원산지로써 아주 오래전부터 차나무가 인간에게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고 찻잎을 채취하여 藥用(약용), 食用(식용), 飮用(음용)의 형태로 다양하게 이용하였다. 일찍이 원시사회 때 차의 발견과 함께 인류의 차 역사는 시작되었고 점차 생활의 진보와 발전으로 차의 이용 방법도 진화하였다. 인류의 차의 이용은 生葉(생엽)을 씹어 먹는 데서 시작하여 찻잎을 물과 함께 陶罐(도관) 안에 넣고 죽처럼 끓여 마시는 방법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후 인간은 차를 끓여 品飮(품음)하게 되면서 음료로 마시게 되었다.

 

중국 음차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지금까지도 확실하지 않다. 학자마다 음차 기원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陸羽(육우)上古時代(상고시대) 神農(신농)을 음차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차 문화의 시초가 된 지역은 중국의 巴蜀(파촉)이다. 파촉 지역은 당나라 이전 중국 차 역사의 중심지역으로 차 생산과 음용은 모두 파촉에서 중원으로 널리 전파된 것이다. 당나라 이전 중국 차 문화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지역은 雲南省(운남성), 四川省(사천성), 貴州省(귀주성) 등 서남부 지역으로 그곳에는 야생 大茶樹(대차수)가 많았다. 중국은 일찍이 차의 효능을 발견하고 찻잎을 다양한 형태로 이용함으로써 유구한 차 역사 속에서 다양한 차 문화를 형성하였다. 인류가 차나무를 발견한 이후 지금까지도 차는 인류의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차나무 종류 및 생물학적 특징

차나무의 형태 특징을 살펴보면 차나무의 모양은 과로나무와 흡사하고 찻잎은 치자나무의 잎과 흡사하며 차꽃은 백장미(찔레꽃)의 꽃과 흡사하며 차씨는 병려나무의 씨앗과 흡사하며 줄기는 정향의 줄기와 흡사하고 뿌리는 호두나무의 뿌리와 흡사하다. 차나무의 품종은 크게 소엽종(중국소엽종)과 대엽종으로 나뉜다. 소엽종은 나무 높이가 2~3m, 찻잎의 길이는 3~6cm이다. 대엽종은 중국 대엽종, 앗샘종, 버어마 샨종으로 나뉜다. 중국 대엽종은 나무 높이가 5~32m, 찻잎의 길이는 12~15cm ; 앗샘종은 나무 높이가 10~20m, 찻잎의 길이는 20~30cm ; 버어마 샨종은 나무 높이가 4~10m, 찻잎의 길이는 12~15cm이다.

 

차나무의 꽃은 가을에 핀다. 꽃은 초가을에서 12월까지도 피는 데 개화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꽃잎 매수는 보통 5~8매이고 꽃잎의 색깔은 대부분 흰색이며 연한 홍색의 꽃잎도 있다. 차꽃의 중앙에는 황금색 수술이 나는 데 수술의 수는 많으면 200~300개까지도 나타난다. 차나무의 과실은 보통 10월에 껍질이 벌어지면서 종자가 나온다. 열매 하나에 보통 종자 한 개가 들어 있지만 많으면 8개까지도 들어 있다. 종자는 흑갈색을 띠며 품종에 따라 종자의 크기도 다양하며 크기는 직경 10내외~15내외이다.

 

 

 차의 어원

인류가 차나무를 발견, 이용하면서 차는 중국의 광활한 지역으로 전파 보급되어 다양한 민족들이 차를 마셨고 지역, 민족, 시대, 채엽시기, 차의 품질, 문자 등에 따라 차의 명칭과 표기법이 달랐다. <茶經>(차경)에 나타난 차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 (), (), (), (), ()()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자)

荼字(도자)茶字(차자)前身(전신)이다.

 

2. ‘(천자)

()은 일반적으로 채엽시기가 늦은 찻잎, 혹은 찻잎이 老葉(노엽)인 것을 뜻한다. 荈字(천자)는 주로 한나라에서 남북조시기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으로 荈字(천자)荼字(도자), 茶字(차자), 茗字(명자)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荈字(천자)()() 이후 점점 사용빈도가 줄어들면서 荈字(천자) 대신 茗字(명자)가 많이 사용되었다.

 

3. ‘(가자)

檟字(가자)가 문헌상에 표기된 가장 이른 문헌은 <爾雅>(이아)이며 ()의 본래 의미는 楸樹(추수)이다. 檟字(가자)는 문헌상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글자로 <爾雅>(이아) 이외 <茶經>에서 나타난다. <茶經>중 차의 맛이 단 것을 ()라고 했고 반면에 어떤 책에는 맛이 쓰고 달지 않은 것을 ()라 한다고 적고 있다.

 

4. ‘(명자)

茗字(명자)는 한나라 이후 비교적 많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당나라에 이르러 문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글자로 詩詞(시사), 書畵(서화) 등에서 자주 등장한다.

 

5. ‘(설자)

蔎字(설자) 또한 차를 가리키는 글자이지만 문헌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은 본래 香草(향초)를 뜻하며 蔎字(설자)를 이용하여 차를 가리켰다.

 

6. ‘(차자)

<茶經>(차경)이 세상에 나온 이후 茶字(차자)가 점차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지만 <茶經>(차경) 저술 후, 8세기에도 茶字(차자)가 주도성을 띠지는 못했으며 한동안 荼字(도자)茶字(차자)가 같이 사용되다가 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茶字(차자)가 통용되었다.

 

차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글자인 (), (), (), (), (), () 등은 茶字(차자)로 정착되기까지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 발전했다. 수천 년 동안 차의 역사와 함께 존재했던 차의 명칭은 지역, 민족,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글자로 표기되고 불리워졌다. 중국의 차의 명칭은 해로와 육로를 거쳐 외국의 차의 명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세계 각국에서 차를 부르는 말은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중국에서 차가 외국으로 수출 되면서 그 용어도 함께 전해졌다. 차가 중국의 광동지역에서는 cha,복건성 하문 지역에서는 te 혹은 tay라 한다. 광동어계(육로)복건어계(해로) 광동어 cha,하문 te,tay 페르시아 cha,네덜란드, 독일 thee, 아랍 shai, 영국 tea, 터키 chay, 프랑스 the, 러시아 chai,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te, 일본 cha, 이탈리아,헝가리,체코 te, 포루투갈 cha, 핀란드 tee, 인도 cha, 스리랑카 thay, 티벳 ja, 한국 ta, cha

 

 

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중국으로부터 불교문화의 도입과 함께 전래되어 신라말기와 고려시대에 매우 번성하였으며 기록상으로 나타난 차의전래는 <삼국유사>,<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살펴볼수 있지만,그 이전에 <동다송>에 의하면 백두산의 식물잎을 따서 다려 마셧다는 백산차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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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행다법

1. 고려시대 진다의식

고려시대 진다의식이란 삼국시대의 헌다의식이 발전된 것으로 국가의 많은 의식에 차를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차를 올리는 의식은 그대상이 신불이거나, 선왕이거나, 외국에서 온 사신 이거나, 임금이거나, 오악삼신일때도 있다. 의식때마다 그대상이 바뀌게 되는데 그 대상에 따라 진다의식도 그정차가 각기 다르다.

 

행다법 재연

 

 

조선시대의 차문화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억불숭유 정책을 새로운 국가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이로인해 불교와 함께 융성했던 차문화 또한 쇠퇴하게 되었다.

 

1. 조선사회의 차

다방 : 조선초에는 궁궐이나 태평관(사신의 숙소)에서 사신에게 다례를 베푸는 일과 조정이나 왕실의 다례를 주관하는 일을 하였다.

다시 : 사헌부와 혜민서에서 다시를 행하였다.

다모 : 각 관처에서 관리들의 차 심부름을 하기위해 서민계층에서 선발된 격이 낮은 여성을 말한다.

 

2. 문인들의 차생활

조선시대 문인들은 대체로 대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차를 즐겼으며 선비정신인 안분지족의 차생활을 하였다. 문인들은 계회를 조직하여 차를 마시며 시도 짓고 친목을 도모하였다. 또한 선비들은 차를 마시며 선수행을 하였다.

 

3. 백성들의 차생활

일반백성들은 주로 약용으로 차를 이용하였다. 또한 차가 몸과 마음의 나쁜 기운을 없앤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적에 를 쓰기도 하였다

 

4. 가례의 차

조선조에 유교가 들어와서 국가의 통치이념이 됨에 따라 송나라 주희의 학설로 주자가례가 준행되었다. 가례란 집안에 일이있을때 준해서 지키어 행하는 예법으로 관,,,제의 사례를 말한다. 제례에 있어서의 차례는 기제사처럼 밥과 국을 올리지 않고 차와 간단한 사절식으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제사에 차를 쓰는 것은 귀신이나 신명이 차로 인해 감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차가 나지 않는 지역이나 음다풍습이 쇠퇴한 후에는 밤을 가루내어 점다하거나 물이나 술 등을 차려놓기도 했다. 또한 관례,혼례,상례 때에도 초기에는 차를 올리는 다례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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