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19세기 말 영국의 런던에서 처음 생겼다. 19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정치적 부강을 누리게 된 영국은 오락물을 급조하게 되었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이 뮤지컬 화스(Musical farce:뮤지컬 촌극)였다. 다음에는 ‘뮤지컬 코메디’ 라는 명칭이 붙여졌는데, 희극과 춤과 노래와 미녀들을 동원한 무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코메디’가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리면서 본격적인 양식으로 형성된다.
영국(웨스트엔드)
1. 영국 뮤지컬 시장의 형성
영국의 초기 뮤지컬은 1728년 존 게이의 발라드 오페라인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에서 시작하였다. 이때의 뮤지컬은 무대는 경직되고 전통적인 오페라와 연극 양식을 좀 더 가벼운 코믹 터치로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형식의 발전은 길버트와 설리번의 공동작품을 공연하기 시작한 1877년경 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영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강한 국가였다. 그러다 보니 세계의 무역상들과 부호들이 거래를 위해 런던으로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위한 적당한 오락물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 뮤지컬 파스(Musical Frace)류의 공연물이다. 당시의 뮤지컬 파스는 자유롭고 애매한 제목의 극본, 풍부한 노래와 춤, 희극 오페라 무대의 인기 있는 연주자들과 화사한 미인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게 특색이었다.
그 뒤 이 형식은 더욱 발전되어 1893년 존스의 음악으로 ‘게이티 걸<A Gaiety Girl>’을 상연하였는데 이것이 뮤지컬 코미디라고 불리 우며 영국 연극사에 처음으로 뮤지컬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첫 번째 작품이다. 기록에 의하면 영국 뮤지컬로서 최초의 빅 히트를 기록한 작품은 작가 겸 배우이자 극단 대표였던 아서 애쉬의 1916년 공연된 ‘추친쵸’이다. ‘추친쵸’는 팬터마임 ‘알라딘’에 기초한 작품으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와 이국적인 분위기로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추친쵸’이후, 20여 년 동안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은 거의 없었고, 1920년 중반부터는 미국 뮤지컬이 웨스트엔드 극장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1937년에 ‘나와 나의 여자<Me and My Girl>’라는 영국 뮤지컬이 기세등등하던 미국 뮤지컬의 불길을 잠시동안 잡아 두었다. 특히 이 작품 속에 등장했던 ‘램버스 워크(Lambeth Walk)’라는 춤이 매우 유행하였다. 1960년에 초연된 ‘올리버<Oliver>’는 ‘나와 나의 여자’ 이후 최대 히트 작품으로 기록됐고, 영화로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라이오넬 바트가 뮤지컬로 만들고 그것을 캐롤 리드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서는 롱런하였고 영국에서는 7년 동안이나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2. 영국 뮤지컬 공연의 특징
웨스트엔드의 극장은 50곳이 조금 넘는다. 일반적으로 좌석 규모 500석 이상이며 연중무휴로 공연하는 극장을 웨스트엔드로 분류한다. 웨스트엔드는 술집 2층을 무대로 꾸민 극장부터 창고나 빈 건물을 임대한 극장, 소방서나 낡은 교회를 개조한 극장에 이르기까지 무대 구조나 관객층, 레퍼토리도 각양각색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연극(뮤지컬)을 만들고 장기 흥행을 통해서 수익을 올린 '세계 최초로 연극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곳으로 주로 공연되는 장르는 뮤지컬이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은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의 감각적이고 섹스어필하며 쇼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대체적으로 문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명제를 담은 작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런던 뮤지컬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20세기의 모차르트로 불리며 런던 웨스트엔드뿐만 아니라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지배해 온 뮤지컬의 황제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1948~ )로 대표작으로는 천재적인 작사가 팀 라이스를 만나 그와 함께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에비타’, ‘캣츠’, ‘유페라의 유령’, 그리고 가족용 뮤지컬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등 이 있고, 손댄 작품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에게 붙은 또 다른 별명은 '마이더스의 손'이다. 현대 뮤지컬의 본고장이며 세계 4대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의 고향으로 이에 대한 시민의 자부심이 높다.
미국(브로드웨이)
Ⅲ-1. 미국 뮤지컬 시장의 형성
미국 뮤지컬 시초는 18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은 옷의 괴도’라는 작품이 미국 최초의 뮤지컬로 여겨지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로도 40년 이상동안 미국 전역에서 공연이 계속 되었다.
19세기 미국에서의 무대 공연은 보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무언극, 버라이어티쇼, 민스트럴쇼, 희극조 오페라, 이 네 가지 유형은 서로 결합되어 레뷰(Revue)로 발전한다. 점점 미국만의 새로운 뮤지컬 스타일을 만들려는 노력들이 시도되었다. 그중 190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조지코한의 등장이 미국적 뮤지컬을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출연자들이 열광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스타일의 뮤지컬을 만들어 낸 것이다.
1914년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유럽으로부터의 문화수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4년간의 전쟁기간은 미국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미국인들 스스로가 자신을 갖게 된 기간이었다. 이때 등장한 작곡가가 바로 제롬 컨이다. 그의 뮤지컬은 노래와 가사가 극의 흐름 속에 융합되었고, 극의 구성 자체도 시대에 맞게 만들었다. 또한 일상적 언어를 활용하였다. 그는 1927년 ‘쇼 보트’를 작곡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가사와 곡이 제대로 융합을 이루었음은 물로 음악과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제대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는 미국 뮤지컬의 시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풍자극, 연애 극이 무대에 등장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인물은 조지 거쉬인으로, 그가 형인 아이러 거쉬인과 같이 만들어낸 뮤지컬인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는 뮤지컬로서는 처음으로 1931년도 퓰리처상을 획득했으며, 1935년도에 공연한 ‘포기와 베스’는 오페라에 못지않은 음악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기와 베스’는 브로드웨이가 탄생시킨 미국의 고전작품이며, 삽입곡은 현대 가수들에게까지 불리고 있다.
1940년대에는 뮤지컬 삽입곡목 작사의 성숙기이자, 도약기라고 볼 수 있다. 흑인들의 민속, 비신사적인 주인공의 언어 등이 가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답지 못한 말투들이 노래 가사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결실은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공동작업과 그들의 작품 ‘오클라호마<Oklahoma>’라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코미디 작가인 닐 사이먼의 뮤지컬 코미디들이 연속적으로 히트 했다. 이와 같은 뮤지컬들을 우리는 보통 두 종류로 나누고 있다. 그 하나는 뮤지컬 코미디이고, 또 하나는 뮤지컬 플레이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스타일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뮤지컬 코미디 쪽이 뮤지컬 플레이보다는 내용면에서 가볍고, 또 극의 구성도 허약한 편이며, 이야기의 전개와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깰 수도 있는 곡들도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뮤지컬 플레이는 구성이 단단하고 주제도 현상적이거나 현실 도피적이지 않은 삽입곡들도 극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60년대에는 두 전통적인 장르 외에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뮤지컬이 시도되었다. ‘헤어<Hair>’, ‘가스펠<Godspell>’, 같은 록 뮤지컬이다. 록 뮤지컬이 시들해져 가자 70년대에 들어 콘셉트 뮤지컬이라는 것이, 또 80년대에 하이브리드 레뷰라는 형태의 뮤지컬이 얘기되어지고, ‘코러스라인<Chorus Line>’ 같은 작품은 이 두 계열에 다 속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2. 미국 뮤지컬 공연의 특징
1900년 42번가에 세워진 ‘빅토리아 극장’이 브로드웨이의 시초이다. 현재 타임 스퀘어를 중심으로 흩어져있는 크고 작은 극장은 40여개로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은 그 10배가 넘으며 상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의 편수는 대략 200편 정도이다.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의 ‘얼굴 마담’으로 여행객들에게는 관광 코스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1900년대 들어 가장 화제를 끌고 있는 작품은 고전이 되어 버린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 유령’등 모두 런던으로부터 건너온 작품이다. 브로드웨이는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상업적인 뮤지컬로 대표되는 브로드웨이, 예술성과 흥행성을 갖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는 오프브로드웨이,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실험극들이 주로 오르는 오프오프브로드웨이로 나뉜다.
프랑스
1. 프랑스 뮤지컬 시장의 형성
프랑스 뮤지컬은 프랑스라는 지역적 경계에 국한된 뮤지컬이 아니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전 지역, 즉 프랑스어권 문화시장을 바탕에 두고 만든 뮤지컬을 일컫는다. 프랑스 뮤지컬의 대표 격인 ‘Notre Dame De Paris’도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작사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 뮤지컬을 단순히 프랑스 지역 내의, 프랑스 사람들의 뮤지컬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뮤지컬로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0년 내외로 그 역사가 매우 짧다. 프랑스에서 뮤지컬이라는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예술은 저속하다고 하여 쉽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뮤지컬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에 전파된 것으로 세계 뮤지컬계를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가 양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 작품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Notre Dame De Paris’의 성공을 계기로 프랑스에서의 뮤지컬은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으며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2. 프랑스 뮤지컬 공연의 특징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사에 있어서 프랑스어만이 가지는 언어의 아름다움과 감수성을 활용하여 한편의 시라 불릴 만큼 은유적 표현이 많으며, 운율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얻어지는 언어의 리듬감 등에서 그 특성을 발견할 수 있고,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인문학적 유산 등은 프랑스어 뮤지컬만의 독특한 향기를 낸다.
대규모 공연장에서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세트로 꾸며지는 이른바 스펙터클 뮤지컬(혹은 체육관과 같은 대규모 공간에서 무대가 꾸며진다는 의미의 체육관 뮤지컬이라고도 불린다) 형식에서 찾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또 영미권 뮤지컬과 차이점으로는 노래를 부르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의 반주를 생음악이 아닌 녹음을 활용한다는 점도 영미권과는 차별화되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으로 손꼽아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와 달리 프랑스 상업 뮤지컬들은 이 분야의 후발주자인 관계로 자본주나 극장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했던 영미권의 연주자 노조와 달리 상대적으로 경제적이거나 효율적인 제작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사회문화적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약 정리
나라 | 영국(웨스트엔드) | 미국(브로드웨이) | 프랑스 |
뮤지컬 시장 형성 |
·초기 뮤지컬 : ‘거지오페라’ ·19세기 말 뮤지컬 파스류 등장 ·‘게이티걸’ 뮤지컬코미디로 불리우며 등장한 첫 번째 작품 |
·‘검은 옷의 괴도’ 미국의 최초 뮤지컬 · 조지코한이 미국의 뮤지컬을 본궤도에 올려놓음 · 60년대에는 록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 시도 헤어(Hair), 가스펠(Godspell) |
·프랑스어권 문화시장을 바탕에 두고 만든 뮤지컬 말함. ·자신의 언어에 자부심이 높아 영어작품이 대부분인 뮤지컬이 인정받기 힘들었음. |
특징 | ·세계 최초 연극에 있어 규모경제 실행 ·세계 4대 뮤지컬의 본 고장 ·문학적, 철학적 명제를 가진 작품이 많음 |
·빅토리아 극장이 브로드 웨이의 시초 ·상업적 뮤지컬인 브로드웨이, 예술성과 흥행성을 갖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오프브로드웨이, 실험극이 주로 오르는 오프오프브로드웨이로 나뉨. |
·스펙타클 뮤지컬(체육관 뮤지컬) 형식 ·배우와 무용수가 분리되어 있음 ·뮤지컬 반주를 녹음을 활용해서 함. ·대표작 : Notre Dame De Par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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